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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정 Nov 12. 2017

#16. 마지막 울림

그래, 여기까지 참 잘 왔다.







프로테스탄티즘


메카를 방문하는 무슬림 순례객들의 

인파를 볼 때마다 놀라곤 했지만, 

기독교도 못지않다는 것을 

바티칸에 와서 알았다. 


물론 종교적 의식이 주된 목적인 무슬림과

여러가지 다양한 목적으로 바티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의례히 바티칸 미술관과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 

성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상을 만난다는 측면에서는 

이 또한 종교적 리추얼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도 특별히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바티칸 투어에 참가했다. 


순례객(?)들의 행열은 실로 엄청났고,

바티칸 미술관의 좁다란 복도를 인파에 떠밀려 다녔다.

그 복도 위 천장...

그게 다 그림이었다! 

액자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그림들이 너무 리얼해서 액자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천장의 작품들은 100% 그림이었다. 액자의 프레임까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벽화가 있는 방에 이르면,

만국 공통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장권을 꺼내들고 인증샷을 찍는 것이다.

정말 투어 자체가 일종의 종교적 의식 같다.

누군가 좀 더 창의적인 인증샷을 개발해주길... 



투어 내내 화려함과 웅장미에 도취되어 있던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성베드로대성당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대체 이게 뭐라고 찍고 있는거지?”


우리는 역대 성인들의 조각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거둔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이곳이 메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프로테스탄트의 후손들이다.





마지막 울림


로마에 있는 개신교도들의 한인교회


우리 부부의 이탈리아 일탈여행의 끝은 

로마 시내에 있는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어떤 관광정보지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깊은 울림을 느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카톨릭의 장엄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나면서 

신의 존엄에 압도되는 경외감은 줄곧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신의 위로와 치유, 평안함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 깜냥의 한계가 제일 큰 원인이었겠지만, 

역설적으로 소수의 개신교인들만 찾는 이 소박하고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예배당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프로테스탄트들인가 보다.


30여명 정도되는 한국인 신자들이 모여 드리는 작은 예배였지만, 

감동은 바티칸을 능히 뛰어넘었다. 

아내는 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예쁜 장식 하나 없이 십자가 그림만 덩그러니 그려져있는 

예배당의 잔상이 로마의 찬란함에 들떠있던 감정들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그리곤 이곳으로 떠나온 목적에 대해 다시금 되묻게 만든다. 

신께서 우리에 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여기까지 참 잘 왔다. 고개 숙이지 말거라.

  괜찮다. 그만하면 잘 살아낸거다.

  난 네가 부끄럽지않다.”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엔진이 멈췄던 것은 

우리 부부의 삶에 큰 선물이었다. 


바쁜 일상에서 현재라는 선물을 놓쳐버리고 살 때, 

다시금 이탈리아를 떠올리고 싶다. 

열흘을 믿음직하게 견뎌준 두 아들과 가족들이 그립다. 

떠나올 때만큼이나 두근두근 설렌다. 


일상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







2016년 여름, 두 아들 떼어놓고 
무작정 아내와 단 둘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담아 온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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