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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정 Oct 18. 2017

#02. 일탈의 변(辯)

어쩌다 로마






“여보, 나 로마에 가보고 싶어.”           


2016년 7월 어느 날, 

성인 수족구로 격리치료를 받고 있던 아내가 

불쑥 로마에 가고 싶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단다. 

불현듯 그곳이 떠올랐단다. 


그리고 아이들 빼고 우리 단 둘이 가잔다! 

그런데 그 의지가 사뭇 결연하여 

거부할 사유를 찾지 못했다.


아내의 돌발선언은 

여름 휴가를 딱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나왔다. 


남들은 그 귀하디 귀한 유럽여행을 위해 

6개월 혹은 1년씩은 준비한다는데, 

우리는 한 달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늘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생이 부부에게 

계획에 없던 여행은 

매우 중대한 도전이다.



범생이 부부에게 계획에 없던 여행은 중대한 도전이다. (Photo by Glenn Carstens-Peters on Unsplash)



아내는 휴학 한번 없이 대학을 4년만에 마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4개월만에 첫째를 임신했고, 

3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는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둘째 때는 박사 과정을 병행했다. 

직장과 사회활동, 학업과 양육, 가사 일을 

여린 몸으로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결국, 

쉼 없이 달려온 그녀에게 

연초부터 건강의 적신호가 켜졌다.


건강검진 결과, 

췌장암 지수가 높게 나왔다. 

뿐만 아니라 소화기관쪽 지표가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평소의 증세들도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천만 다행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약물치료와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했다. 


좌우당간 이제 겨우 삼십 대 중반인데,

'암'이라는 단어가 인생을 스치니 얼마나 놀랐을까. 

이래저래 아내는 지쳐있었다. 

그러던 중 면역력 약한 아이들이나 걸린다는

수족구가 발병했다.


그녀의 남편 또한 만만치 않게 치열한 삶을 산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내일 모레면 마흔을 바라보는 그이기에 

건강 앞에 당당할 수 없다.

치열함의 정점에서 아내보다 일주일 먼저

수족구가 발병했다.




우리는 한껏 과열된 엔진을 안고 달리다 퍼져버린 자동차와 같았다. (Photo by Lechon Kirb on Unsplash)



우리는 마치 

한껏 과열된 엔진을 안고서 달리는

자동차와 같았다. 

멈추어야 하는데 멈추질 못했다. 

과열된 엔진을 식힐 생각은 않고, 

더 좋은 엔진오일만 탐했다.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결국 멈추고 말았다.


수족구로 인한 격리치료를 위해 

출산 후 처음으로 아이들과 일주일 정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이들도 의젓하게 잘 견뎌 주었다. 

어쩌면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자신감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잠깐 멈춘다고 별 일 안 생긴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크게 걱정할 것 없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괜찮다.

  아프면 아프다고 티 내도 된다.”


어린 둘째 걱정에 단 둘만의 여행은 상상도 못해봤었다.



양가 어머님이 이러한 자신감에 힘을 실어주셨다. 

애들 우리가 봐줄 터이니, 

너무 걱정 말고 한 열흘 둘이 멀리 가서 쉬고 오라신다.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탈을 감행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상처 주는 일탈이 아니라, 

가족의 응원을 받는 일탈이었다.


그렇게 범생이 부부의 한 달 초치기 일탈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2016년 여름, 두 아들 떼어놓고 
무작정 아내와 단 둘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담아 온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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