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province) 이동
1년간 정든 집의 퇴거 직전, 혹시라도 집주인에게 트집 잡혀 보증금을 차감당할까 싶어 와이프와 온 집안의 대청소를 해야 했는데,
여기저기 청소하다 보니 아뿔싸, 양면테이프를 떼어낸 곳들의 페인트가 벗겨졌다.
그냥 내버려 두기엔 너무 티가 났고, 혹시나 이걸 빌미로 몇백 불 차감당할까 걱정돼 인근 Home Depot와 Benjamin Moore 매장에 페인트 색상 샘플을 받으러 들렀는데, 벗겨진 페인트 조각을 가져오면 함께 찾아봐준단다.
색약이라 같은 색을 찾을 자신이 없었던 필자는 벗겨진 페인트 조각을 가져가 직원분들께 요청해 가장 비슷한 색상의 페인트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10불도 안 하는 가격에 페인트를 구입해서
브러시 대신 키친타월로 찍어 바르고, 헤라 대신 안 쓰는 멤버십 카드로 펴 바르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땜질을 마쳤더니 좀 티 나긴 했지만 집주인도 별말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집 내부는 이렇게 마무리했고, 지난 1년간 여러 영어수업을 통해 사귄 지인들과 작별인사도 해야 했는데, 때마침 다가오는 여름방학 전에 대부분의 수업들이 종강파티로 학기를 마무리하길래 겸사겸사 이사 간다는 소식을 알리며 송별파티도 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정든 집을 떠났지만, 막상 현재 집의 계약 종료와 다음 집의 계약 개시일 사이에 2주간의 공백이 있다 보니 토론토 인근에 구한 에어비앤비에서 거주한 뒤에야 진짜 이삿길을 떠날 수 있었는데,
이사 전날, U-Haul 창고에 보관해 뒀던 이삿짐을 택배로 발송하고, 나머지 짐은 트렁크에 실어놔야 했다.
이삿짐을 택배로 발송할 때 심장이 ‘철렁’ 한 사건이 또 생겼으니, 바로 중량화물의 우체국 접수 불가 통보였다.
아침 일찍 창고 인근의 우체국, Canada Post로 택배박스를 한가득 싣고 갔는데,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무거운 화물은 발송이 안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홈페이지에 30kg 이내, 가장 긴 변의 길이가 1m 이내면 접수된다고 쓰여있다고 반문했더니,
우체국에 보유하고 있는 저울이 작아 큰 박스는 무게 측정이 불가하니 우체국 물류창고에 직접 찾아가서 접수해야 하는데, 사전예약이 필요할 거라 오늘 바로 발송은 어려울 거란다.
당장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열댓 박스의 택배를 못 보낼 수도 있다는 상황에 잠시 패닉에 빠졌지만, 캐나다에서 1년 살아보면서 사람by사람, 지점by지점 차이가 크다는 것을 떠올리고, 창고에서 몇 km 떨어진 다른 우체국으로 급히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저울이 앞서 방문했던 지점과 같은 크기길래 자신 없는 목소리로 ‘호~옥시 이런 화물 접수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상관없다고 가져오라고 한다.
마치 하늘이 무너졌다가 솟아날 구멍을 발견한 느낌에 수량이 16박스인데도 괜찮은지 다시 확인한 뒤에서야 와이프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행여라도 마음을 바꿀까 봐 재빨리 택배상자를 실어 날라서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16박스 배송비: 총 $1.370.53)
이제 남은 건 한국에서 준중형차로 캠핑 다니며 익힌 테트리스 스킬을 이용해 최대한 짐을 싣고 이동만 하면 됐는데,
2박 3일간 차 안에서 지루할 때 도움되길 바란다며 캐내디언 지인이 아이들에게 선물해 준 레고와 클레이는 정말 큰 도움이 됐고, 혹시 몰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블루레이 디스크들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길고 긴 이삿길 끝에 새 집에 도착하니 온타리오 호수가 저 멀리 보이던 이전 집 뷰가 아쉽지 않게 대서양으로 흘러나가는 강물이 바로 앞에 보이니 첫인상만큼은 합격이었다.
앞으로는 새 집에서 새로운 추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