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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재 Aug 29. 2021

Go light, Get more

Essay,  서울메이드 #19

하이킹에는 여러 슬로건이 있다. 그 중 미국 장거리 하이킹 문화에서 시작된 ‘LNT(Leave No Trace)’가 대표적이다.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은 아웃도어 활동이 자연에 가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자연을 존중하는 하이커들에게 기본적인 매너로 자리잡았다. 이 외에도 ‘Go light, Get more’ 라는 슬로건이 있다. 무게를 줄일수록 자연에서 더 많은 경험과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제로그램’의 모토이기도 했던 해당 슬로건은 지금의 백패킹 문화가 막 우리에게 정착할 무렵 알려졌다. 

Landmannalaugar, Iceland, 2019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줄이고 최소화된 배낭을 꾸리는 것 부터 시작된다. 먹을 것을 잔득 싣고 자연에서의 먹방을 SNS에 담는 아웃도어 문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이에 동참했다. 나 역시 배낭에서 코펠과 버너를 빼기 시작했고, 불이 없어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불필요해 보이는 여벌의 옷은 챙기지 않고 손빨래가 용이한 빨리 마르는 기능성 의류를, 그리고 가볍고 부피가 적은 침낭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구스다운 충전재를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물학대 이슈는 ‘RSD(Responsible Down Standard :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행위를 금지한 제품에게 주는 인증.)’ 인증을 거친 제품을 구매하며 줄어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쓰레기를 자연에 남기지 않기 위해 플로깅 백을 챙겼다. 

RSD 를 준수한 침낭, 플로깅 백, 20개의 옷걸이

불필요한 것을 줄이기 위한 하이킹 실천은 점차 나의 일상으로도 번졌다. 옷장 가득이던 옷들을 주변에 나눠주고 어느덧 20여벌의 옷이 남겨졌다. 증정 받은 수많은 텀블러들 역시 필요한 이들을 만날 때면 떠나 보내고 이젠 하나의 텀블러가 남았다. (정작 내가 구매한 텀블러는 하나밖에 없었다. 우린 너무 많은 텀블러를 생산하고 증정하는게 아닐까?) 가끔 테이크 아웃잔이 내 손에 들어오는 불행이 있게 되면 집으로 가져와 작은 화분을 만들었다. 오래전 학창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대학원 생활에는 종이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중고 테블렛을 구입했다. 얇은 공책크기에 셀 수없이 많은 책과 논문과 필기노트가 들어왔다. 여행을 좋아해서 인지 나에겐 다양한 용도의 가방이 있었지만 이제는 일상용과 하이킹용 두개만 남게 되었다. 

일회용 컵 화분, 사용중인 텀블러, 하이킹 배낭

뮤지션 입장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면, 새로운 악기가 필요할 때는 중고를 먼저 고려한다. 이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행했던 것인데, 나무악기를 다루는 뮤지션들은 대부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수준급의 악기들은 좋은 소리를 내기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잘 관리된 중고를 구매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덕분에 중고거래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친숙한 행위다. 또한 평생을 ‘작업실’ 이란 공간을 지녀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은 이사를 할 때면 서로 가구를 주고받는 것에도 익숙하다. 지금 작업실 가구와 집기들도 그렇게 채워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악기들

하이킹을 통해서 뜻밖에 미니멀리스트가 되었고 점차 비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실천을 위함이 아닌 쓰임이 적은 물건이 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해 졌다. 그래서인지 더이상 내겐 필요없는 물건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물건을 상자에 두었다가 나 대신 꼭 필요해 보이는 지인이 누구인지 떠올려 본다. 덕분에 바쁜 삶으로 잊고 지냈던 이들에게 반가운 안부를 묻게 된다. 경제활동에 필요한 것을 구입할 때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실생활에 꼭 필요한 소모품이 아니면 되도록 들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점차 가벼워지는 라이프 스타일은 오래 간직했던 목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줬다. 나의 모든 짐을 차 한대에 싣는 정도로 줄이고 다양한 장소를 이동하며 살아보는 것이다. 물론 작업환경을 모바일로 전환하는 것이 그리 쉬운 도전은 아니겠지만, 한 곳에서 평생을 머무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고장들이 주위에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삶은 길다. 여행을 하며 지나온 곳들을 관찰하면서 자연과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에 주목하는 중이다. 간혹 ‘여기다’ 라고 느껴지는 고장이 있으면 지도앱에 체크해 두고 사진에 담는다.  


음악인으로, 그리고 환경을 공부하고 걸으며 소유의 개념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많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 느꼈다. ‘나’라는 사람은 비울수록, 일상을 가볍게 할 수록 더 많은 것들을 깨닫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Go light, Get more.” 

Lake District National Park, United Kingdom, 2019

                                                 해당 글은 서울메이드 19호에 삽입된 에세이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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