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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상 Jan 19. 2024

뜻밖에 명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분 버티기

어릴 적에야 운동장에 집합해 치르던 조회는 그야말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였다.

움직이지 않고 그 긴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곤욕이다.

잠시라도 몸을 가만있지 않고 뛰어다니는 8살 아들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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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를 따라나선 교회의 예배시간은 1시간이다. 가만히 앉아 식순이 지나가는 한순간 한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인데 그 당시 모든 아버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권위 있고 무서워서 꾹 참고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 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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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시간에는 꼭  쓰러지는 친구들이 한 두 명씩 발생하곤 했다. 햇빛에 약하고 빈혈증세를 보이는

피부 하얀 학생들은 종종 양호실로 업혀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쓰러진 친구를 업고 가는 학생은 다시 조회 대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쉬고 있을지 매우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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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곳에서 몸을 이리저리 가만 두지 못하는 습관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그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이 습관을 한방에 고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역시 군대였다. 하루는 연병장에 집합해 기합을 받는 중이었는데 작은 움직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모기가 내 볼에 앉아 피를 빨아먹는 느낌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참아냈다. 더 한 것은 간지러움을 참아내야 했다. 이것은 정말 고난도의 인내가 필요했는데 간지러움을 참으면 오히려 그 부분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오랜 역사를 거쳐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스마트폰이나 무언가 읽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며 '심신이원론'을 주장하였다. 마음과 신체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병은 마음에서 나온다던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현대사회의 인식과는 정반대 되는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지만 절대로 죽지 않는다 것 또한 사실이다. 여전히 논란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철학자와 의사에게 맡기고, 그렇다면 나는 눈앞에 내려진 당면과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당장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분을 버텨보기로 하였다. 내일은 6분, 그다음은 7분.

이렇게 늘려나가다 보니 '뜻밖에 명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명상은 말을 천천히 하게 해주는 효과를 낳았으며, 생각하고 대답하는 심지 있는 사람처럼 나를 보이게 만들어

주는 순기능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사람을 목표로 나는 '뜻밖에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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