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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리 Jun 28. 2020

 발작버튼, 하나쯤 갖고 계시죠?

분노조절 장애 극복기

‘발작 버튼’이란, ‘발작’ 한 것처럼 갑자기 화가 치솟는 걸 빗대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발작 버튼이 한번 눌러지면 울그락불그락 얼굴색이 변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 변화가 동반되며 상대방에게 '막말'로 쏘아붙인다거나 눈물이 나기도 한다. 혹은 그땐 괜찮다가도 문득 자기 전 곱씹으며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남들(직장동료, 친구들)을 대할 땐 발작 버튼이든 뭐든 감정을 유연하게 조절하면서 가족에게는 가감 없이, 그리고 사정없이 그 버튼을 눌러 버린다는 것이다.



발작버튼이란, 조절하기 힘들 만큼 화가 났을 때를 의미한다.

 


유독 이 버튼이 자주 눌러질 때가 있었다.  


  “네가 누나니까 이번에 동생 노트북 살 때 보태주지.”

  “너도 알다시피 네 동생은 아직 어려서 뭘 모르잖아.”

  “동생 안경 새로 해야 되던데, 네가 좀 사줄래?”



엄마는 내게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주어진 요구와 짊어질 할당량이 많았다. ‘둘째는 첫째만큼 못 받으며 자랐다.’의 논리는 첫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나에게 심히 억울하고 비합리적이었다. 이 사건도 엄마의 동생에 대한 '측은지심'이 트리거(trigger)가 되었다.



 그 날은 남편과 사촌오빠와 함께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동생도 함께 보고 싶었으나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중이라 연락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으로 당일 아침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리샘'으로 연결되기 직전까지 끊지 않고 기다렸지만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으면 전화를 하겠지.' 하며 나도 출근 준비를 했고 퇴근할 때쯤 다시 생각이 나서 한번 더 연락을 했더니 역시나 시험공부로 못 오겠다고, 다음에는 일찍 알려달라는 말만 남겼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남편과 사촌오빠와 오붓하게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띠링~’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다음에는 미리 말하라고 하네. 오늘 아침에 문자라도 남겼으면 갈 수 있었을 거였데.’


라고 엄마의 문자가 온 것이다.


 그 순간 발작 버튼이 강하게 눌러졌다. 술에 취해서인지 화가 나선 지 이유는 모르겠지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엄마한테 오늘 누나랑 형들 못 봐서 서운하다고 오늘 아침에 문자라도 남겼으면 갔을 거라는 식으로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냐?”


  아뿔싸, 엄마에게 갈 불똥이 동생에게 가 버리고 말았다. 쏟아버린 말을 주워 담고 싶었는데 술이 원수였다. 터져 나온 말들은 동생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엄마가 사소한 일에도 관여해서 동생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가 몹시 불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공부하느라 애쓰는 동생을 보며 짠한 마음에 그렇게 말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과 관련한 엄마의 요구가 나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말을 거듭했지만 엄마에게 둘째는 ‘그냥’ 안쓰럽고, ‘그냥’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상대가 변할 수 없다면 내가 변하면 되는 것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나와 모두를 지키는 최선이었다.






 “동생 시험 끝나면 좋은 데 데려가서 같이 놀아.”

 “나중에 동생 장가가면 누나로서 도리를 해라.”  


이제 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셔도 나의 발작 버튼은 반응하지 않는다.


내 지뢰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무엇 때문에 터지는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반응했던  나의 지뢰를 샅샅이 조각조각 분해해서 제거해버린 것.



그것은 나를 위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 삶을 위한 진정한 자기 계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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