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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리 May 25. 2020

살려고 글 써요.

지금부터 봉인해제


‘ 살려고 글 써요.’          




 나는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난받지 않기 위해 살았다. 나보다는 타인이 먼저였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 봐 겁먹은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풀지 못한 생각과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몸은 녹초가 되어 굉장히 피곤한데도 잠이 들면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새벽에 깨버리곤 했다.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다 싶어 쓰게 된 글쓰기. 살려고 쓰는 글쓰기이다.



고민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털어놓으면 되지 왜 굳이 글로 쓰냐?




물론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때도 있다. 다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정도의 고민일 때 '나'를 잘 돌아보면 나는 늘 공감과 지지, 위로를 받고 싶을 때이다. 즉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이라는 것이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모자라 듣는 이에게 내가 듣고 싶은 '답'까지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지 않은가.



  가령,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 혹은 엄마 등 소중한 존재와 다툼이 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상대는 나를 위한 답시고 그 사람을 같이 욕해주거나 비난해주는데 사실 그게 '편치 많은' 않은 것이다. 밉고 속상해도 타인의 입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나왔을 때 희한하게도 불편함이 생긴다.



  나는 그냥 내 마음을 '알아만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청자에 입장에서는 나를 위해서 같이 욕을 해줬다는 걸 알면서도 대화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하는 찝찝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남편에게 직장에서 있었던 일, 특히 스트레스받았던 일에 대해 종종 털어놓을 때가 있다.



"00 이가 나한테 사람들 앞에서 조언을 해준답시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너무 불쾌하더라."

"그건 다 너를 위해서 해준 말일 거야. 기분 나쁘겠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내 남편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나는 내 마음을 '이해' 받기를 원하며 공감만 해주길 바랐는데 남편은 나의 입장에서 듣지 않고 상사의 입장에서 듣고 말해준다. 참으로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남의 편'이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고민 있어도 남편한테 말 안 해야겠다. 그럼 누구에게 말하지?'라고 느끼며 고독감까지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바를 캐치하지 못하거나 내 마음을 공감을 받지 못했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다. 받지 않아도 될 실망감과 서운함.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고민을 꺼내고선 받을 필요 없는 상처를 내가 만드는 꼴이 돼 버릴 수 있다. 상대가 말해주었으면 하는 '답'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털어놓는 건 고민을 들어주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로서 털어놓는 것은 에너지가 꽤 필요한 일이다. 우선 내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대충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다음 이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지도 정해야 된다. 내 마음을 잘 알아줄 것만 같은 사람, 현명한 조언으로 나에게 전환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충분히 고려한 후 선택한다. 그렇게 신중히 고른 상대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말을 하면서도 ‘이 사람이 내 고민을 비난하면 어쩌지?’ ‘이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를 수도 있을 텐데 그럼 어쩌지?’ ‘이 고민이 내 이미지를 망치면 어쩌지?’ 등 대화 중 일지라도  마음 한 켠에는 걱정이 생긴다.



지워가면서 비울 건 비우기



 나는 무엇보다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말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글을 쓰면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정리하며 표현할 수 있다. 키보드에는 백스페이스가 있고 필통에는 지우개가 있듯이 틀리거나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끔하게 정리된 문장과 그 문장들로 만들어진 문맥에서 나의 비합리적인 사고가 발견되고,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내 방어기제를 발견한다. 그렇게 시끄러운 머릿속 마음의 소리들이, 얽히고설킨 내 생각들이 객관화되며 나를 이해하게 되고, 너를 이해하게 된다.      



 홍수가 되어 넘치고 흐르던 감정들을 글로 쏟아 내고 나면 내 마음은 폭풍전야가 지나간 바다 마냥 잔잔해진다. 내가 느낀 감정,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말 그대로 토해내듯이 써 내려간다. 쭉쭉 글을 쓰고서는 다시 그 글을 본다. 그리고 비워지고 비워져 남아야 할 것들만 남는다.  



'그래, 이게 다 내 탓이 아니었구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그럼 내일 이거라도 시도해보아야겠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생각 정리가 된다. 그리고 마법같이 잠이 든다. 무얼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밥을 먹게 만든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힘들 때, 도통 잠이 오지 않을때, 식욕이 없을 만큼 괴로울 때 나에게는 글쓰기가 답이 되어준다.       



 이렇게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써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상담을 배우러 대학원 수업을 다닐 때, 교수님께서 강의 첫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상담이란 자기 이해, 자기 수용으로부터 자기표현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이렇다. 글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마침내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많은 걸림돌이 있겠지만 글쓰기가 습관이 될 때까지, 아니 ‘삶’이 될 때까지 쓰고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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