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거킹 Victim

by SM

업무상 퇴직을 결정한 사람들과 퇴직면담(Exit Interview)를 하게 되는데 최근 한 젊은 박사 출신 직원의 퇴사 사유는 '외로움'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자기 맡은 업무 하다가 퇴근하는데 누구와도 말 한마디 나눌 기회도 없이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직원의 경우 업무상 매니저가 해외에 있다 보니 시차때문에 대부분 이메일로 업무지시/보고/협의가 이루어지고 또 그 매니저가 공교롭게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있어서 출장도 불가능하여 온라인으로 뜨문뜨문 미팅하는 것이 전부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박사를 같이 했던 친구로부터 본인 다니는 스타트업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받았고 연봉,복리후생 등의 조건은 훨씬 나빠지고 비즈니스 성공도 자신하기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로 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의 직무들은 점점 더 전문화, 세분화되어가고 또한 대면이나 전화보다 email, chatting이 주요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 와서 대화를 할 일이 점점 없어진다. 특히 소위 스몰토크나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를 할 일은 더더욱 기회가 없다.


코로나 시기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그건 더 심해졌다. 그게 익숙해지다 보니 주변에 회사 동료가 있어도 업무적인 대화가 아닌 일상의 대화는 어색해지는 일까지 생긴다. 심지어 공간의 효율을 위해 지정좌석이 아닌 자율좌석제를 하면 매번 내 주변 동료가 바뀌게 되므로 당연히 인사말 정도 나누는 것 이상의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조직이 커지고 일이 더 복잡해질수록 협업은 더 요구되고 중요해진다.


그런데 협업은 단순히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을 배분해주고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해보라고 던져준다고 결코 일어나지는 않는다. 서로 대화를 해야 하고 신뢰가 쌓여야 한다.


평소에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봐야 제대로 된 협업이 될 리 만무하다. 업무 협업을 하기 위한 대화가 익숙하려면 그 이전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대화가 훨씬 더 많이 더 미리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의 대화란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이다.


즉,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혹은 어렵거나 슬픈 일이 있는지 웃고 즐기는, 회사의 업무효율 측면에서 '잡담'이라고 배척될 수 있는 그런 대화인데 업무 협업을 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그런 일상의 대화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이런 대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사무실에 파티션이 없어서 고개만 돌리면 옆자리 앞자리 동료가 보였고 내가 하는 말을 주변 동료들이 쉽게 다 들을 수 있는 구조였고 의자만 돌리면 삼삼오오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업무 중 수시로 누군가 던지는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의 대화가 2-3분 왁자지껄하게 일어났고 수시로 반복되었다. 늘 점심 밥을 같이 먹었고 거창하게 회식일정을 잡지 않아도 퇴근 무렵 눈이 마주치면 알아서 번개 회식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술 먹다가 직장 동료 집에 2차를 하러 가기도 하고 집들이나 돌잔치 같은 행사도 자연스러워서 서로의 가족이나 개인적인 것 까지 잘 알고 지내는 관계였다.


또 커뮤니케이션의 대부분은 전화였기 때문에 전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어서 동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전화상 쩔쩔 매거나 혹은 화를 내거나 하는 모습을 통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휴대폰이 생긴 이후 없어진 문화지만 동료 부재 중 전화가 울리면 그 전화를 땡겨 받아서 누구에게서 어떤 전화가 왔는지 전달해주는 것이 동료나 부하직원의 큰 과업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생기고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업무적인 것 까지 이어지면서 굳이 강조할 필요 없는 협업이 일어났고 또 그 만큼 동료애가 돈독해지고 신뢰가 쌓였다.


그러다 IT가 발전하고 업무가 전문화,세분화 되면서 사무실 파티션 담은 높아졌고 심지어 Room이나 큐비클 형태로 사방이 막힌 업무공간으로 변하고 옆자리 동료가 매일 바뀌는 자율좌석제로 바뀌고 사무실 전화는 이메일이나 메신저 다음으로 밀려났고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제가 도입되면서 물리적으로 동료와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일상의 대화는 점점 더 사라져갔다. 사무실은 조용해졌고 '잡담'은 더 어려워졌다.


회사에서 일상의 대화 '잡담'이 사라지면 외로워진다. 우울해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 동료애나 신뢰는 사라지고 협업은 어려워진다. 회사는 일을 하러 오는 곳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러 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GPTW(Great Place to Work)시상식에 다녀왔다. 좋은 회사라고 자랑하는 많은 회사들은 시설과 제도를 내세운다. 수영장이나 헬스장 또는 미끄럼틀이나 놀이공간이 있는 혁신적인 사무실이나 허먼 밀러 의자로 싹 바꾼 것 같은 시설을 자랑하거나 넉넉한 휴가제도나 다양한 복지제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정작 GPTW의 정의를 읽어보면 시설이나 제도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다.

GPTW는 '경영진과 상사를 신뢰할 수 있고,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직무와 조직에 자부심을 가지며,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일터'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전부 감정 또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즉, 월급을 많이 주고 좋은 의자를 주고 훌륭한 복지제도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좋은 회사는 좋은 동료들과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면서 일할 수 있는 일터라는 것이다.


이제 동료간 서로 대화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억지로라도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직원들은 고립되고 하나의 사회로 회사는 와해되고 붕괴되고 개인은 좌절한다.


공간과 업무 환경적으로 근무 중 '잡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따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라운드테이블, 워크샵, 커피타임, 회식을 또 하나의 제도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는 시도를 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앞에 말한 일상의 대화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회식이나 워크샵과 같은 인위적인 모임은 특히 개인 시간을 침해하기 때문에 반발도 상당하다.


회식, 즉 회사동료와 개인시간인 저녁시간에 같이 술 마시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사실 그게 즐겁지 않게 된 것은 오히려 근무 중 에 잡담하지 않고 자기일만 하게 되면서 서로의 이해가 부족하고 공감이 떨어지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없어져서 회식 자리에 가서도 즐겁지 않은 업무 얘기나 나이든 꼰대들의 '라떼' 얘기만 나누게 되기 때문인듯도 하다.


결국 나는 그 해답이 점심을 같이 먹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밥을 같이 먹는 행위는 문화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절차이고 기술이다. 말 그대로 식구(食口)가 되는 가장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행사이다.


밥을 같이 먹고 그 시간에 잡담 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쉽기도 하고 매일매일 자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허기를 달래면 심리적 안정감이 생겨서 어느 때 보다 넓은 포용력이 생길 것이고 그 바탕위에 때로는 어렵거나 복잡한 대화도 할 수 있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화도 가능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마이크로소프트가 대치동 포스코 타워에 있을 때 지하에 버거킹이 있었고 '버거킹 victim'이란 말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동료를 찾지 못해 지하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사들고 와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는 업무 특성상 그리고 회사가 지향하는 바도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조되던 시절이고 집단적인 것을 강요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굉장히 금기하는 문화였다.


그러다 보니 점심 먹는 것도 개인이 알아서 하는 분위기라 일하다 점심 때가 되어 파티션 너머로 고개들면 다들 뿔뿔이 점심먹으러 이미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늘 우루루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국내 대기업 그리고 구내 식당이 있던 GE를 다녔던 내 입장에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매일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을 찾는 것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번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전혀 적응하지 못해서 점심을 건너뛰기도 했고 혼자 밥 먹는 모습을 회사 사람들한테 들키기 싫어서 사무실 꽤 멀리 떨어진 식당에 혼자 가서 점심을 먹곤 했다. 결국 나는 그 해결책으로 점심시간에 헬스를 등록해서 다녔고 들어오는 길에 간단히 김밥이나 국수로 식사를 때웠다.


모든 다른 조건들은 만족스러웠으나 점심시간만은 너무 괴로웠고 그 이전 회사들을 그리워했었다. '버거킹 victim'이란 말이 있었던 만큼 그 문제가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았고 결국 쉽게 해결되지 못했다.


좋은 회사가 되려면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한다.


점심시간은 모여서 일을 하는 '회사'에서 모이는 공식적인 시간 중 거의 유일하게 서로 잡담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 하나도 점심을 같이 먹을 동료를 찾지 못해 혼자 밥 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점심을 같이 먹는 것 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대화는 어느 정도 충족될 것이라 생각한다. 점심시간에서 시작된 대화가 확장되어 더 다양하고 폭넓은 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은 더 나은 인간 관계를 맺고 더 나은 협업을 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는 첫걸음이자 필요조건인 셈이다.


점심 같이 먹어요. 여러분!


SM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스와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