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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했을까?

by SM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한 것이 25년을 넘어 30년을 향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을 시작으로 외국계 회사 몇 군데에 이르기 까지 그래도 월급 수준이 낮지 않은 회사를 다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 직전까지 와이프도 나름 월급 많이 주는 회사를 꾸준히 다녔으니 수 십년간 쌍끌이로 돈을 벌어왔다.


아주 절약하면서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낭비하거나 사치하지는 않았다. 옷이나 신발은 아울렛에서 사는 수준, 외식으로 한우 소고기 사먹기는 좀 후달려서 삼겹살이나 닭고기 사먹는 수준, 큰 맘먹고 한 2년에 한번 정도 해외여행 그것도 가까운 동남아 다녀오는 수준…

어디에도 그런 기준은 없겠지만 대충 사람들이 말하는 딱 소위 '중산층'의 삶을 살아왔다.


그럼 나와 와이프 월급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나와 비슷한 벌이를 한 주변 사람들 중에는 집이며 상가며 혹은 주식이며 코인이며 상당한 자산가들도 많은데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한걸까?


재작년에 송중기가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가 큰 부자가 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당땅을 사들였고 아마존 주식을 샀고 2002년 월드컵 4강을 예측해서 돈을 벌었다.


그걸 생각해보면 내가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 역시 단지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돈의 흐름을 보거나 시장을 읽는 실력이 없었던 것이고 혹은 사람들의 심리를 읽는 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쪽에 돈이 몰리는 지 어느 쪽에 수익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실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에도 게을러서 재테크와 관련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더 공부해보거나 발품 팔아 경험치라도 쌓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가장 큰 자산이자 부의 축적에 제 1 수단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만 생각해보면, 1999년 결혼하면서 일산에 전세 5천 아파트로 시작해서 전세를 전전하다가 2006년 쯤 3.8억짜리 광장동 재건축 아파트 딱지를 샀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나 이 의사결정도 내가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돈 벌 팔자는 아니었는지 동호수 추첨도 처참하게 실패하여 1층이 필로티인 2층 북향집을 뽑았다.

2008년 입주하고 때마침 쌍둥이들이 태어나 4년 남짓 그 집에서 살았는데 집이 너무 춥고 시끄러웠다.


2012년 와이프 직장 문제로 광장동 집을 팔고 강남 쪽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에 전세와 매매 가격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한참 갭투자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우리도 조금 무리해서 매매를 할 것인지에 대한 오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국 난 그때 단호한 선언을 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집을 사는 일은 없다. 재산을 집에 깔고 살면서 이자에 허덕이지 않겠고 그 돈을 현명하게 소비하고 투자하겠다"


이런 선언의 밑바탕에는 당시에도 이미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고 생각해서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것이라 생각했다. 또 저출산, 고령화가 되면서 부동산 수요는 낮아지고 지방분권으로 서울집값은 떨어질 것이며 부동산 말고 더 수익이 높은 현명한 투자처로 돈이 몰릴 것이라 판단했다. 정부 정책도 종부세며 양도소득세며 부동산 가격 억제를 드라이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상당히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당연히 모두 다 틀렸다. 아파트 수요는 폭발했고 서울 특히 강남은 훨씬 빠르게 가격상승했고 부동산은 여전히 제 1의 투자처였다.


이 2012년 선언이야말로 '부'의 측면에서 내 인생 최대의 오판이었고 사실상 내가 '부자'는 아니라도 변변한 아파트 한 채는 가진 '가장'이라도 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스스로 걷어찬 뼈아픈 패착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최소한 강남 아파트 가격에 대한 예측을 정반대로할 만큼 우매했고 한동안 그걸 인정하지 않을 만큼 고집도 세서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언제가는 가격이 떨어지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 누워 입 벌리고 감떨어지기 기다리는 우둔함과 하등 도움되지 않는 고집을 가졌던 것이다.


사실 부동산 관련해서는 단지 지식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어찌 보면 좀 철이 없다고 해야하나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하는 수준이었다.


2018년인가 고속터미널 앞에 한신4차 아파트 매물을 보러 간 일이 있다. 재건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보러 간 집은 시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1층에 있는 집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은 고속버스 회사에서 버스기사님들이 잠깐 눈붙이고 가는 임시숙소처럼 쓰던 집이었다.


몇 십년을 그런 용도로 집을 썼으니 집도 낡았고 냄새도 났고 방방마다 수건이며 유니폼이 어지럽게 널려있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한 5분 구경을 하고 나오니 영 그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와이프한테 "너무 낡았는데"하고 반대의사를 밝혔고 그 집을 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이 없는 눈을 가진 것인가? 낡은 것이야 이사할 때 한 천만원쯤 들여 인테리어 하면 깨끗해지는 것이고 또 몇 년 안에 재건축 한다니 아주 오래 살 집도 아니었는데 단지 낡은 수건과 옷가지들 널린 것만 보고 손사레를 쳤던 것이었다.


그 뒤에 그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가진 주식이 떨어진 것 보다 내가 가지고 있다 판 주식이 오를 때 훨씬 배가 아픈 법이니…


다시 말하면 나는 자산/재산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던 것이고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코인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 때 우리도 코인을 사 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때도 나는 이미 가격이 고점이라고 생각했고 코인은 결국 현실에서 화폐로 거래되지 못하기 때문에 '네델란드 튤립 구근'과 같은 투기 상품이라 판단해서 짧은 시간안에 그 놈의 '버블'이 꺼질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 혹은 그걸 거래하는 사람들의 심리나 코인의 쓰임새나 유용성 등 다양한 것들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둔한 고집은 계속되어 여전히 1원 어치도 코인을 산 적은 없다.


이런 굵직굵직한 실패를 겪고 기회를 놓치면서 몇 년 전부터 난 우리 집에서 자산과 관련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내게 허락된 것은 소소한 가전이나 가구 쇼핑할 때 최저가 검색하는 정도이다.


다만, 나도 이런 권리 박탈, 의견 배제에 공감하고 동의했다. 내가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결코 우리 집 자산 형성과 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름 '가장'인데 스스로 처지가 불쌍하고 부끄럽고 자책과 자격지심이 생기는 일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도 부동산 버블은 꺼지고 가격은 떨어질 것이고 코인은 효용을 다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의 끝을 부여 잡고 있긴 하다. 그런 날이 오면 우리 집에서 '가장'으로서 내 발언권도 다시 얻으리라 믿으며…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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