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열어보니 내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는 '2025년 : 집에서 술마시지 않기'로 되어있다.
몇 년 전 부터 연초에 그 해의 다짐을 카톡 프로필로 써놓고 있는데 (그래봐야 이것도 역시 뻔하긴 하다. 절주, 다이어트...) 그 이전에 카톡을 만들고 거의 십 수년동안 내 프로필 문구는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였다.
그 문구를 왜 쓰게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 좀 튀어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실제 30-40대에 몸과 마음이 바빠 진심으로 좀 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지었던 것 같다.
요즘 그 말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우선 첫째 체력적으로 쎄게 놀기 어려워졌다.
젊을 때는 소위 '꽐라'되게 만취했어도 다음날 오후면 또 어디 술자리가 없나 기웃거릴 정도로 회복력이 빨랐는데 지금은 최소 이틀은 쉬어야 제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래서 요즘 술자리에 내가 항상 챙겨가는 것은 상쾌환, 주당비책과 같은 '숙취해소제'이다.
나와 술 마시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대충 비슷한 수준들이라 매번 술자리때마다 내가 '숙취해소제'를 가져와 나눠주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고 고마워한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모든 사람이 술자리를 시작하면서 숙취해소제를 동시에 털어먹는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도대체 얼마나 퍼마시려고 저러나 싶을테고 젊은사람들이 보면 저렇게 걱정되면서 뭐하러 술을 먹나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안타깝게 얼마 마시지도 못한다. 그냥 심리적인 플라시보효과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거리가 되기에 다들 낄낄거리면서 그냥 이벤트 처럼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꼭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골프를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도 체력적 한계는 분명해진 듯 하다. 노는 게 예전 같지 않다.
둘째, 잠이 너무 일찍 온다. 10시, 늦어도 11시면 슬슬 졸리기 시작하니 예전 처럼 12시 넘어 노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졸려서 밤늦게 까지 놀기가 어렵다.
셋째, 같이 놀 친구도 별로 없다. 사교적이지도 않고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어서 지금 연결된 사람들하고 연이 끊어지지 않는 정도 연락하고 만나고 놀다보니 자주 술자리를 가질 일도 없고 놀 기회도 없다.
회사에서도 공식적인 식사자리가 아니면 따로 개인적 친분으로 같이 술을 마시거나 노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넷째, 노는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아무런 이유나 근거 없이 끝나고 번개로 '한 잔'하던 회사 문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 삼겹살에 소주먹고 2차로 치킨에 맥주 먹고 노래방가고 또 포장마차가고 하는 전형적인 '아저씨' 술자리 패턴이 더 이상 젊은 사람들에게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술자리 문화를 가지고 놀아서 나같은 '아저씨'에게 허락된 물리적,심리적 공간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놀 '기회'는 점점 빈도수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다섯째, 새로운 놀이를 받아들이는 데도 열정적이지 않다. 게임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엄청 신나거나 흥분되지 않는다. 뭐든 배우는데 이해도 떨어지고 더뎌서 불편하고 어색하다.
얼마 전에 아이들이 하는 인터넷 총놀이 게임을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빠르게 뭔가가 왔다갔다해서 포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새로 뭔가 배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크게 느낀 것 같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여행지를 가거나 관광지를 가도 큰 감흥이 없다.
이런 여러 제약조건과 변화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격하게 놀고 싶다. 자꾸 자꾸 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요즘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와서 서로 카톡으로 '잘 들어왔다' '오늘 즐거웠다' 같은 마무리 인사말을 할 때 난 항상 끝에 '또 놀자'라고 쓴다. 왠지 그 말이 나 스스로에게 또 놀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또 다른 놀 '핑계'나 '빌미'를 만드는 느낌이라 뿌듯함이 들기 때문이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가 가사인 노래의 2번째 노랫말은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이다. 즉, 결국 세상살이 변화무쌍하여 영원한 것은 없으니 지금 당장 더 즐겁게 놀으라는 가사이다.
또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경영이 하는 명대사가 있다. "노는게 귀찮으면 죽어야지요."
그래서 나는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 계속 놀고 싶다.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