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루하거나 심심한 것을 싫어한다.
엘리베이터가 미국 고층 건물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라고 하는 데 당시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속도가 느렸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꼈고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한다.
엘리베이터 제조사인 OTI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속도를 개선하려 했으나 기술력의 한계로 속도 개선은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한 직원의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다시 하거나 머리를 정돈하는 등으로 지루함을 덜 느끼게 되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마 거울만으로 그 지루함이 다 해결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엘리베이터에 스크린이 달리기 시작했고 영상이 송출되었다.
20여년 전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에 모니터가 달리고 영상이 나오기 시작할 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도 생각할 시간이나 혹은 머리를 잠깐 쉬게 하는 시간 조차 빼앗아 회사가 직원이 생각하기 원하는 바를 주입하는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휴대폰에 이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고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살면서 부터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조차 지루할 틈, 심심할 틈을 가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뭘 들여다 보고 자극받고 쾌감을 얻고자 한다. 요즘은 더 짧고 강한 자극을 위해 '숏츠'형태 짧은 동영상을 계속계속 넘겨보면서 소위 '도파민'을 충전하고 거기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 아침에 눈을 떠 PC를 켜고 유튜브를 틀어 뉴스를 본다. 심지어 샤워할때도 작은 태블릿을 욕실에 틀어놓는다. 출근길에 끊임없이 유튜브 쇼츠를 본다. 쉬는 시간 내내 SNS를 하거나 카톡을 한다. 집에 와서 쉬는 시간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채워지고 잠자리에 들 때도 예전에 책을 읽다 잠드는 것 처럼 태블릿을 옆에 세워놓고 페이지를 넘기다 잠든다.
아주 짧은 시간 조차 디지털로 부터 떨어져 디톡스를 할수 있는 상황과 여건은 마련되기 어렵다.
예전에 네트워크나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여행은 기다림과 심심함의 연속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 전세계 어디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니 이제 여행도 디지털로 부터 도피 할수 있는 수단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고안해낸 것이 '멍때리기 대회'같은 것인가보다. 직접 경험해본 적도 없고 자세히 본 적도 없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이율배반적인 '지루함과 심심함의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혼자 청계산에 등산을 했다.
어제 마신 소주의 여파로 오르는 동안에 허덕거렸고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후달거렸지만 흠뻑 땀을 흘렸고 좋은 공기를 마셨고 짙푸른 여름 산으로 눈도 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녀오고 나서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서너 시간 스마트폰의 방해 없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복잡한 것들을 정리하기도 했고 또 어떤 구간은 아예 생각조차 없이 걷기도 했으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으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좀 더 자주 혼자 산을 다녀야겠다. 멍때리기 위해서.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