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청계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해장국 집에서 해장국을 시켜놓고, 막걸리 한통을 혼자 마셨다.
주말에 유튜브나 보며 뒹굴거리지 않고, 한 두어시간 등줄기에 흠뻑 땀이 나도록 운동을 했다는 것이 스스로 뿌듯했다. 날은 화창했고 막걸리 한통은 충분히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주말을 맞아 한껏 차려 입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아마 결혼식장을 가거나 데이트를 하러 가는 길이겠지.
멍하니 지하철 문 옆 기둥에 기대 있다가 순간 ' 지금 내 모습은 너무나 전형적인 50대 아저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색상과 스타일의 등산바지, 회사 행사 때 나눠준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티셔츠, 투박한 등산화, 세련되지 않은 등산배낭, 손에 들린 등산 스틱.
얼굴은 약간 술기운이 올라 불그스레하고, 눈은 초점이 흐리고, 땀 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뒤섞여 썩 유쾌하지 않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순간,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왠지 젊은이들이 나를 슬쩍 피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단지, 가볍게 운동삼아 동네 마실 나가듯 대충 차려 입고 나온 것이다. 등산바지나 등산화는 오래전에 사두었는데 별로 입거나 신지 않아서 유행에 지난 것 일 뿐 낡거나 헤진 것은 아니고, 아침을 거른 채 등산을 마쳐 허기진 김에 해장국 한 그릇 먹었고, 시원한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여 딱 1통 혼자 먹은 것 뿐이다. 그리고 땀을 좀 흘려서 냄새가 날수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샤워 잘해서 찌든 냄새는 아닐것이다라고 강변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또래 아저씨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곱지 않다.
'개저씨'라 불리기도 하고 '꼰대'라는 표현은 일상처럼 쓰인다. '영포티'라는 조롱 섞인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허세, 고집, 갑질, 간섭, 부적응, 무시, 오지랖, 내로남불, 무개념, 가부장적, 복지부동, 고리타분… 묘사하는 모든 단어가 부정적이다.
그런 주관적인 또는 감정적인 '거부감' 뿐 아니다.
최근 어느 게시판에서 읽은 글은 '40대-50대들은 단군이래 가장 꿀빤 세대'라고 되어있고 수많은 좋아요와 20-30대들의 동의 댓글이 줄줄 달렸다.
요지는 이랬다. 대학도 시험하나 딸랑 보고 쉽게 들어갔고, 대학가선 데모한다고 기웃거리며 공부는 하나도 안 했으면서 경제성장기 덕에 취업도 용이해서 왠만하면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부동산 저점일 때 아파트 살 수 있었고 그 이후 부동산 폭등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수억 수십억 자산을 불려놓고 이제 젊은이들은 그 기회조차 뺏으려는 '사다리 걷어차기' 한다는 글이었다.
물론 더러 권위적이고 독단적, 독선적이고 마초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일부의 모습을 전체로 일반화하여 모든 50대 남성을 '꼰대'로 지칭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단군 이래 가장 꿀 빤 세대라는 것도 동의할 수 없다.
베이비부머세대 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 세대와 비교하면 우리 세대들도 적지 않은 고생과 아픔을 겪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다 보면 ‘라떼는 말이야’를 찾는 꼰대처럼 보일까 싶어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 우리는 결코 욕먹을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며, 젊은 세대들에게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한 해에 백만명씩 태어나서 한반에 70명인 교실에서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학교를 다녔고 여름이면 에어컨은 언감생심 선풍기도 없었고 , 겨울이면 연통 연결해서 난로를 조립하고 아침일찍 당번이 조개탄을 수령해와서 겨우 한기만 피하는 수준의 교실에서 공부했다.
선생님들의 체벌은 일상적이었다.
때마다 폐지수거한다고 신문지 모아서 학교에 제출했고 불우이웃돕기로 쌀을 모아 내기도 했다. 기생충박멸위해 매년 체변봉투 제출해야했고 혼분식장려한다고 도시락 뚜껑열어 보리쌀을 섞었는지 검사했고…
'푸시맨'에 밀려 지하철 타고 출근했고 야근을 밥먹듯이 했지만 야근수당이란 것은 받아본 적도 없고 상사의 반말과 욕설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던 시대에 막내 생활을 했고...
고생베틀을 해야하나?
이제 모양새나 차림새가 좀 구리더라도 열심히 살아 온 50대 아저씨들도 색안경 끼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봐주기를 기원합니다. 언젠가 꼰대,개저씨가 아닌 멋진 호칭으로 불려질 날을 기다립니다.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