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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나쁘다

by SM

'머리가 나쁘다'라는 말은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다.


그 모욕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머리가 나쁜 것을 일컫는 욕은 '바보, 멍청이' 로 부터 '천치, 저능아, 지진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무수히 많고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욕설이나 비속어가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왜 모욕적일까 생각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난 머리가 안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들으면 모욕적으로 느낄 것임에 틀림없다.


자녀가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부모가 '우리 아이는 머리가 나빠요'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대개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안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머리가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암기력이나 기억력이 좋다는 것인가? 응용력이 좋다는 것인가? 이해력이 좋다는 뜻인가?


학교 다니는 학생 때 머리가 좋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시험성적이 좋다는 것으로 치환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도 머리가 비상한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건 '잔머리' 나 '잡기' 정도로 치부되거나 좋게 해석해줘도 '창의력'이나 '순발력' 정도이지 '머리가 좋다'까지 다다르기는 어려운 듯 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고 회사 생활을 하면 소위 '일머리'라는 것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머리'는 학생 때 '머리가 좋다는' 낮은 차원이 아니라 대단히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방정식이다.

단순히 지능이나 지식 수준이 아니라 '노하우' '요령' '눈치' '역학관계' '분위기' '의욕' '적극성' '말투' '목소리 톤' '표정' 등등 수많은 복합요소가 결합된 개념이다. 그래서 그런 '일머리'는 지식으로 습득해서 배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정 교육과 학교 생활을 이어오면서 축적되어 온 그 동안의 인생역정이 녹아들어 표출되는 고도화된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 '일머리' 없는 사람 중에 실제 머리가 나쁜 즉,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이다. 지능을 어디까지 정의하는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암기력이나 이해력과 같은 1차원적인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아무래도 내가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정 선발 과정을 거친 회사 직원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단순히 '머리가 나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지능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다른 것들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실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업무를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데 거기에 뒤쳐지면 일처리가 더뎌 지거나 비효율적일수 밖에 없다. 수많은 시스템과 Tool을 익혀야 하고 늘 새로운 트렌드나 시장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나만해도 솔직히 50대가 넘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와 진다. 나름 어릴 때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빨리 습득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문득문득 따라가기 어렵다는 좌절감 같은 것도 있다. 특히 요즘 20-30대가 만드는 PPT 의 잘 짜여진 구성이나 화려한 그래픽,애니메이션 같은걸 보면 감탄스러우면서 한편으로 더 이상 내가 이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생각에 주눅들거나 좌절감 같은게 생기기도 한다.


둘째 경험이 부족한 것일 수 있다.

바보에게 가장 큰 스승은 '경험'이란 격언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경험하는 것이 지식으로 습득한 것 보다 빠르고 더 깊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지혜롭다'는 말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을 통해 가지지 못한 암묵지 같은 것을 장착하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를 뜻한다.

또 어떤 경험도 무의미한 것은 없어서 설혹 실수나 실패의 경험도 성장과 성공에 크게 작게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에서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나 경력이 많은 직원이 더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그 만큼 경력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과 경력이 부족한 사람은 처음 경험해 보거나 처음 맞닥들이는 상황에 대처가 미숙하여 '머리가 나쁘게 '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세번째는 게으른 사람일 수 있다. 이 경우가 어찌보면 제일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게으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판단이 둔하고 실수가 잦고 의욕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본인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와 변명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머리가 좋지 않다'고 들을 확률이 높아진다.


네번째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나 자기 생각이나 자기 주관에 빠져 판단이 독단적이거나 독선적인 경우 '머리가 좋지 않다'고 들을 수 있다.

요즘 말로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내가 좋고 즐겁기 보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눈치' 없거나 '분위기 흐리거나' '선을 넘는' 사람들의 경우 대개 이런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일머리를 말할 때 흔한 예시로 나오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급한 일을 먼저 하기 위한 것이고 'one more mile'이라고 하여 추가적인 노력을 하는 것도 결국 다음 사람이 해야할 일을 그 만큼 덜어주거나 받아 보는 사람이 더 만족할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첫번째로 부터 마지막으로 갈 수록 점점 성인이 되어 배워서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은 조금 더 노력하면 배워서 익힐 수 있고 경험도 스스로 찾아서 새로운 것들을 해보면서 쌓아갈 수 있는데 게으름은 기질적인 부분도 크고 삶에 대한 태도일수도 있어서 하루아침에 바뀌기 쉽지 않다. 특히 공감능력 같은 것은 살아 온 인생의 전반을 통해 차곡차곡 쌓여서 발현되는 부분이라 사실상 바꿀 수 없다 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다른 장점으로 그것을 감추거나 전환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내가 말한 것은 회사라는 조직생활 내에서 '일머리'를 뜻하는 것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처음에 말한 것 처럼 '머리가 나쁘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기분 나쁜 지적이고 피드백일 수 밖에 없으니 최소한 그런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경험하고 성실하고 더 공감하면서 살아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또 배우고 경험하고 부지런떨고 더 공감하면서 살아야겠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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