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
2000년 초반,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인들은 야만적이다”라고 발언했다가 손석희 앵커와 설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기억에 꽤 많은 한국사람들이 문화적 상대성을 무시한 그녀의 발언에 공분했다.
나도 그랬다.
"남이 소고기를 먹건 개고기를 먹건 왜 감놔라 배놔라야...개나 소나…"
문화적 상대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 무렵은 나도 종종 개고기를 먹을 때 였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에는 매년 여름철마다 '싸리집, 감나무집, 시골집…'을 순회하면서 개고기를 '머스트잇(must eat) 하는 매니아 부장님들이 꼭 계셨다. (왜 보신탕집 이름은 다 'XX집'일까… 왜 나를 보신탕집 데려간 분들은 죄다 '부장님들'이었을까...)
퇴근 무렵 매니아 부장님들이 "몸보신 좀 해야지"하고 운을 띄우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가방을 싸서 따라 나섰다. (사실 어떤 메뉴건 술먹자 하면 잽싸게 짐을 쌌지만...)
개고기 맛을 제대로 알아서 좋아했다기 보다, 사실 내 돈 내고 먹기는 비싼 음식이기도 했고, 술꾼의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고기와 국물의 술안주였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와이낫'이었다.
말그대로 내 입장에서는 '개나 소나'였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개고기는 뭔가 '인생 희로애락, 산전수전 겪은 아저씨'들의 소울푸드 같은 느낌이 있어서 먹을 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빨간 뚜껑 진로'를 마신다거나 '돼지 내장이나 삭힌 홍어'를 먹는 그런 허세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보신탕을 먹었던 것은 대략 2010년이나 2011년 쯤, 삼성동 안동댁이라는 상호의 식당이었고 당시 회사 아저씨들하고 복날 무렵에 술자리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그 뒤로는 전혀 기회가 없었다.
그 뒤로는 일단 부서에서 내가 제일 아저씨인데 나는 앞에 말한 부장님들 처럼 '머스트잇'해야 하는 매니아는 아니라서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았고, 부서에 여성분들이 대부분이라 회식으로 '보신탕' 먹자고 제안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또 애견인이 많아지고 반려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지면서 개고기는 점차 '혐오음식'이 되어가서 보신탕집도 쉽게 찾기 어려운 사회적 여건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마 앞으로 보신탕을 다시 찾을 일은 없거나 아주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보신탕을 파는 식당들도 점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주 즐겼던 입장은 아니라서 그게 너무 아쉽거나 안타깝지는 않은데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깻잎에 삶은 부추 잔뜩 얹어서 들깨가루와 초장,된장,마늘을 섞은 소스를 듬뿍 찍은 수육과 얼큰한 국물이 그리워졌다.
엊그제 초복이라 닭한마리를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오랜만에 보신탕집에 가볼 껄 그랬나 싶다.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