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콩콩과 마이마이8

사라져가는 것들

by SM

1981년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 동네에서 스카이콩콩이 대유행했다.

해질 무렵이면 아이들이 하나둘 스카이콩콩을 들고 나와 깡총거리면 놀았고, 그걸 타고 아파트 앞마당을 누비는 모습은 매일 저녁의 풍경이었다.


애석하게 나는 스카이콩콩이 없었다.

아이들 틈에 끼어 같이 몰려다니다가 결국 다른 아이들 타다가 지칠 때 쯤 눈치 봐서 한번 얻어 타야 했다.

내 물건이 아니니 마음껏, 자신 있게 타지도 못했다.

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정말 나만 스카이콩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르고 졸랐지만, 곧 유행이 지나면 갖고 놀지도 않을 그 비싼 장난감을 왜 사냐며 타박만 들었다.


결국 그 여름은 스카이콩콩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가을이 다 되었을 무렵, 아버지께서 스카이콩콩을 사 오셨다.


잠깐 나도 스카이콩콩을 가지게 된 게 기뻤지만 더 이상 아이들은 스카이콩콩을 들고 나와 타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스카이콩콩을 사왔는지 알수 없으나 추측컨데 대유행이 지나 가격이 대폭 낮아졌을 것이고 여름 내내 투덜거리고 징징거렸을 내 모습이 안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물건이었으나 다른 아이들에게는 벌써 흥미를 잃어버린 물건이었다. 저녁나절에 나만 스카이콩콩을 들고 나가 쓸쓸하게 혼자 깡총거리던 장면이 아스라이 스친다.




그로부터 2년쯤 후, 이번엔 ‘워크맨’이란 물건이 아이들 사이에 광풍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집에 덩치 큰 라디오 겸용 카세트 테이프가 유일했던 시절에 휴대가 가능하고 헤드폰을 연결해서 나만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은 실로 혁명적인 신문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이미 많은 아이들이 '소니 워크맨' '파나소닉 아이와' 같은 일제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 보다 좀 형편이 안 되거나 늦은 아이들은 국산 브랜드인 금성 '아하'나 삼성 '마이마이' 제품을 사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카이콩콩 때와 마찬가지로, 반 아이들 대부분이 카세트를 갖고 다니기 시작할 때까지도 나는 갖지 못했다.

부모님 입장에선 집에 이미 전축도 있고 휴대용 카세트도 있는데 굳이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어야 하느냐 싶었을 테고, 무엇보다도 그 작은 기기가 너무 비싸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또 졸랐다.

거의 1년 가까이 조르고 또 졸랐다.


학교가 끝나면 근처 영동백화점 가전 코너로 달려가 실물을 구경하고, 카탈로그를 받아 와서는 꼼꼼히 비교해 가며 제품을 연구했다.

당시 내가 사고자 했던 휴대용카세트테이프의 기준은 이랬다.


매일 밤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들었기 때문에 라디오 기능은 필수였고

정품 카세트를 살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할 수 있어야 해서 녹음기능이 필요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소위 길보드라고 길에 녹음테이프를 팔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몇 년 뒤였던 것 같다)

집에서 들을 때는 형하고 같이 들을수도 있었기 때문에 내장 스피커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 '오토리버스!!' -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프꺼내 뒤집는것이 무에 큰 수고였나 싶겠지만 '오토리버스' 기능은 어린 나에게 놀랍도록 신기술이었고 반드시 '오토리버스'가 되는 모델을 사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소니 워크맨 같은 일제 제품은 도저히 금액적으로 부모님께 접근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조건을 다 맞춘 제품이 바로 삼성 '마이마이 8'이었다.


공약을 걸었다. 지지리 공부 안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반에서 10등인지 15등인지 안에 들어오면

'마이마이8'을 사주는 걸로 약속을 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해냈다.


아버지는 '마이마이8'을 사들고 집에 오셨다.

'마이마이8'의 당시 가격은 대략 8만원 쯤이었다.

일제 워크맨이나 아이와가 10만원을 훌쩍 넘어갔던 것에 비하면 낮았으나 우리 형편에는 상당히 무리한 지출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철없는 중2 남학생이 그런 집안 사정은 알 바 없었고 마냥 좋기만 했다.


스카이콩콩처럼 유행이 다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마이마이계열에서는 상당히 프리미엄급에 속했던 '마이마이8'이었기 때문에 나름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마 한 2-3년은 닳고 달을 만큼 라디오를 듣고,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하고 (노래를 온전히 녹음하고 싶은데 항상 음악이 시작한 후 전주가 나올 때 소개멘트를 하는 DJ가 늘 너무 미웠다)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그 '마이마이8'의 최종 행방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일제 워크맨이나 휴대용 CD Player가 유행하고 가격대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음향기기로 대체되었을 것 같다.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원하는 모든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 처럼 원하는 것을 너무나 빨리 쉽게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뭐든 가지고 누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예전이 생각나고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더 소중한 가치로 기억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 참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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