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의 추억

사라져가는 것들

by SM

기말고사를 마친 아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을 시작했다.

요즘 게임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헤드셋을 뒤집어 쓰고 뭐라뭐라 떠들면서 게임을 했다.


너무 재밌나보다.


거의 꼬박 밤을 새며 게임을 했다.


게임에 중독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나름 자제력이 있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로 저 재미도 '잠시 잠깐 한 때'라는 생각에 야단치거나 뜯어말리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정말 한때다.



내가 처음 전자오락을 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아파트 상가에 오락실이 생겼고 블록깨기나 인베이더 같은 게임기가 들어왔다.


그 전까지 흙바닥에서 망까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다방구 이런 놀이나 하던 아이들에게 전자오락은 신세계와 같았다.


지금 아이들이 하는 게임하고 비교하면 단순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말그대로 하이테크의 정점에 있는 놀이였고 화면에서 내가 의도한 대로 뭔가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단계단계를 넘어서면서 얻는 성취감도 대단해서 순식간에 아이들은 오락실로 몰려들었다.


게임은 점차 진화했고, 6학년이던 1982년쯤 ‘갤러그’와 ‘제비우스’가 등장하며 오락실 전성시대가 열렸다.

'갤러그'는 가히 오락실의 판도를 바꿔놓은 혁명이었다.

적에게 잡혀갔다가 풀려난 전투기를 합쳐 화력을 강화하는 설정, 매번 달라지는 적의 공격 패턴은 아이들을 열광시켰다. 말그대로 눈이 빠져라 게임을 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의 적들을 물리치는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오락기에 50원짜리 동전을 넣고 있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멘 채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며 친구들과 함께 오락실로 달려갔다. 한 판에 50원 하던 때였는데 그 50원도 없을 때는 남들 게임하는 걸 뒤에서 멀뚱히 구경이라도 하고 집으로 가던 때였다.


돈은 없는데 오락은 하고 싶던 아이들은 테니스줄('쑤신다'고 표현했다.)이나 라이터점화장치(딱딱이) 등으로 몰래 오락기 코인을 조작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오락실 주인아저씨의 예리한 눈초리에 쫄아서 심약한 나는 직접 해본적은 없지만 더러 친구들이 쑤시거나 튀길 때 주인아저씨의 감시를 등으로 방어해주고 그 보상으로 한 판씩 얻어 했던 기억은 난다.


버튼을 빠르게 연타해야하는 '올림픽' 같은 오락을 할 때는 플라스틱 자나 탁구공을 반으로 가른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고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게임을 할 때는 맞은 편에 상대편과 실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런 전자오락도 순발력과 같은 운동신경이 필요해서 나는 별로 오락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쉽게 돈을 잃고 나오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까지 그리고 심지어 대학교때까지 오락실을 다녔다.


대학교 때는 단연 '테트리스'가 오락실을 지배했다.

꾸역꾸역 쌓다가 긴 막대기가 나와 여러 줄을 한꺼번에 없앨 때의 쾌감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집집마다 PC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전자오락실은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락실을 다니던 아이들은 PC방으로 모였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가 세상을 휩쓸던 2000년 초반은 이미 30대였고 사는 일이 바쁘고 다른 재미난 일들이 많아 잠깐 맛만 보고 이내 손을 놓았다.

그 뒤로는 모바일시대가 되어 잠깐 국민게임 애니팡에 몰두한 적은 있지만 이제 전자 게임은 내 생활반경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얼마 전에 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보려는 마음으로 같이 게임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들이 하는 발로란트라는 게임을 한번 배워보려고 시도했는데 화면이 너무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바뀌는 데가 조작도 복잡해서 도저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단 이틀만에 포기했다.

전혀 재미있지도 않았고 다시 하고 싶은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아들이 전자 게임보다는 밖에 나가 운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말하지 않았다.

다 '한 때' 일테니까…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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