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회사들, 특히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인사팀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있다.
나는 오래전 부터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솔루션을 내놓는다면 HR 노벨상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과장','차장','부장'같은 직급을 부르는 한글호칭 문제이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많은 경우 실패를 거듭해왔다.
대표적으로 '~님'을 도입한 것이 CJ그룹이고 2000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벌써 25년째이다.
그 이후로 많은 기업들이 '~님','~프로','~선생님','~대표','~매니저'같은 각양 각색의 호칭을 시도했고 '선임','책임','수석'같은 변형된 직급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제도를 원상복귀해서 '과장,차장,부장'을 쓰고 있고, 실패를 자인하고 되돌리지 못한 회사들은 표현이 웃기지만 '공공연하게 그리고 암암리에' 자체 기준을 만들어서 '과장,차장,부장'을 쓰고 있고, 인사팀은 이를 애써 모른척하고 있다.
왜 한글 호칭을 폐지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가?
아주 간단하다. 바로 '호칭'으로 큰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국사람들 처럼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는다.
'OOO' 하고 이름만 부르는 건 같은 동갑내기 친구들 사이이거나 엄마가 화날 때 자식 이름을 외쳐 부를때 뿐이다. ㅋㅋ
심지어 방송을 들어보면 이미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에게 여전히 '~의원님'이라고 부르거나 이름 뿐인 단체를 끌어들여 '소장님''단장님'이라 칭해 부른다. 대개는 이름은 빼고 성과 호칭만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관행은 이름만 부르거나 '~씨'라고 호칭하는 것이 다소 하대하는 느낌을 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존중하는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하관계와 서열이 분명히 존재하는 기업에서는 훨씬 직급이 '호칭'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과장,차장,부장'의 호칭이 아주 직관적으로 회사 내에서의 업무 책임과 경험 그리고 보상 수준 까지 짐작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가령 채용할 때나 다른 회사와 여러 제도를 비교할 때 상당히 유효한 기준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채용 공고에 '과장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만으로 "대략 경력은 10년 쯤 되고 해당 분야의 상당한 실무 경험을 갖춘 중견급 사원이며 신입사원들의 멘토나 사수가 될 수 있는 정도의 관리 역량을 갖춘 직원"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용한 한글호칭을 굳이 폐지하려고 하는 걸까?
우선 지금의 회사 조직 구조에서 더 이상 '부(部)나 과(課)'가 없기 때문에 '부장' '과장' '대리'는 개념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다.
즉, 지금은 팀(Team) 단위로 운영되는 팀제 이기 때문에 Team내에서 팀원들이 가장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업하여 창의적 발상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무엇 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부장-차장-과장과 같은 계층적 호칭은 그런 문화에 역행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회사들이 한글호칭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3년전에 전격적으로 한글호칭을 폐지하고 '~님'을 도입했다.
이미 3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지속적으로 캠페인과 계도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글 호칭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다만 고무적인 것은 소위 고직급이라 할 수 있는 '부장''이사''상무' 등은 아직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 보다 낮은 직급들은 상당 수준 '~님'으로 대체되고 있다. 즉, 경력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님'하는 것은 지금도 어색하지만 젊은 세대들 간에는 '~님'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또 더러는 영어이름을 붙여 쓰기도 해서 활용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기는 하다.
'~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호칭만 바꾼다고 수평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냐?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고 서로 부르기 애매하니까 소통이 더 안된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하지만 최소한 서열이 존재하는 호칭이 점차 사라지면서 말하는 상대방이 '부장'인지 '차장'인지 눈치 봐야하는 번거로움은 최소한 덜었고 또 그만큼 소통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 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좀 더디지만 한 3년 뒤에는 지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연스럽게 '~님'으로 불러주고 불리워지기를 기대하고 있고 결국 수평적 의사소통과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차츰 정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S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