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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계부와 혼술금지

by SM

올 초에 새해 다짐을 몇 가지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술계부'를 작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혼술금지'이다.

(무슨 알코올 중독자도 아닌데 새해 다짐에 2개씩이나 술 관련이라 순간 창피해졌다.)


술계부

짐작하는 것 처럼 술계부는 '음주에 대한 기록'이다.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신 날은 단순히 날짜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리고 어떤 식당에 갔고 누구랑 갔는지 어떤 모임이나 취지였는지 그리고 내 상태가 어땠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상당 기록이 '만취'였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

술계부를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간단하다.

화면 캡처 2025-09-19 234512_2.jpg

첫째 내가 얼마나 술을 먹고 있는지 측정해보고 싶었고 둘째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기록으로 남겨놓고 나중에 들여다 보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통해 가능하면 술을 줄여보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큰 것이었다.


2025년 1월 1일 부터 기록하기 시작해서 9월 19일 현재 총81일 술을 마셨다.

대략 250일 중 81일이니 3일에 1번 꼴로 술을 마신 셈이다.

얼핏 보면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아마 기록하지 않은 예년의 경우는 훨씬 더 잦은 빈도로 음주를 했을 것이다.


'술계부'를 쓰면서 술자리 횟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 높은 성과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술계부에 또 한 줄 올리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하에 일부러 약속을 만들지 않거나 꼭 참석해야 하는 술자리가 아니면 참석하지 않거나 운전을 핑계로 아예 술을 먹지 않는 것으로 횟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


'술계부'를 쓰는 것 만으로 절주를 할 수 있다.

아마 내년에는 올해의 기록을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측정하고 기록되지 않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여기에 쓸 줄 몰랐다.




혼술금지


내 카톡 프로필을 본 사람들이 종종 물어본다.

"술 끊었냐?"

"아니"

"그럼 카톡 프로필 뭐야?"

"집에서 혼자 술 마시지 않겠다는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면 이렇게 반문한다.

"뭐 집에서 술을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퇴근하고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한잔 혹은 위스키 언더락스 한 잔 정도 마시는 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
"고기 먹으면서 와인 한 두잔 혹은 찌개나 탕 종류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몇 잔 혹은 부침개나 수육 같은 것 먹으면서 막걸리 한 통 정도 곁들이는 건 건강에도 좋은거 아니냐고?"


내 답은...이렇다.

많이 마시는 게 문제가 아니고 매일 마셔서 문제야


코로나 시기 3년 동안 절반 이상 재택 근무를 했다. 출퇴근의 부담과 압박이 없었다.

저녁에는 집합금지로 사람들 만나기도 어려웠다.

시간을 때우는 것은 오직 유튜브와 넷플릭스 뿐. (솔직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ㅋ)

그래도 심심하다.


매일 편의점 4개 만원 맥주를 사다 마셨다. 꼬박꼬박 4개씩 먹다가 양이 늘어났다. 4개 만원 맥주에 640ml 소주 1병을 사왔다.

쿠팡에서 오징어 숏다리를 40개씩 구입했다.


저녁먹으면서 소주 한 잔씩 했고 유튜브 보면서 홀짝 홀짝 맥주를 마셨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오징어 숏다리를 함께 뜯으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알딸딸해지면 80-90년대 노래 유튜브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소주와 맥주를 얼추 다 마시고 나면 픽하고 쓰러져서 잤고 또 느지막히 출근시간 맞춰 일어나서 세수도 안하고 PC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매일매일이 그렇게 반복되었다.


코로나 끝나고 나서도 습관이 이어졌다. 소주는 빠졌지만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맥주 4개씩 사들고 들어오는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업무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으나 정신이 늘 맑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이렇게 매일 술을 마시다가는 탈이 나겠구나 하는 자성이 생겼다.


게다가 코로나 끝나고는 사람들도 만나고 술자리도 제법 생겼기 때문에 외부조달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 부터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는 초반에 살짝 약속을 지키다가 결국 흐지부지되고 무너졌다.

그리고 올해 다시 도전 중이다.


술계부를 쓰면서 비교적 약속은 잘 지켜내고 있다.


진짜 술 생각이 간절할 때는 퇴근길에 국밥집에 들러 반주 한잔 하는 때도 있고 와이프를 부추겨서 집 앞 호프집에 나갈 때도 있고 아니면 같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상가 벤치에 앉아 마시기도 하면서 겨우 겨우 갈증을 달랬다.

주말에 혼자 등산을 다니는 이유도 사실 땀 흘리고 내려와서 마시는 막걸리 또는 맥주 한잔이 절반을 넘는다.

늘 그렇듯 문제는 '과유불급' - 지나친 것이 문제다.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만으로도 음주 휴지기를 상당히 가질 수 있고 더불어 그 시간에 이렇게 글이라도 몇 자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 마시는 것은 인생 제1의 즐거움이라 술을 끊을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의 건강유지 특히 정신건강유지를 위해 '혼술금지'는 이어가 보련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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