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0년전 광고였는데 "남편이 죽었습니다. 10억을 받았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보험회사 광고가 있었다.
광고 내용은 남편이 갑자기 죽었지만 가족을 위해 가입해둔 종신보험 덕분에 10억원 보험금을 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여러가지 오해를 사면서 광고는 중단한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적인 오해는 미망인과 보험설계사가 마치 내연관계처럼 보여서 보험사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만든 것이었다.
내 기억에 90년대 후반부터 종신보험이 흥행하기 시작해서 누구나 종신보험 하나쯤은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당시 푸르덴셜이나 ING와 같은 외국계 보험사들이 국내 보험사들의 '보험아줌마'와 달리 '라이프 플래너'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대졸 남자직원을 '보험설계사'로 모집해서 전문적인 재무설계를 동반한 종신보험 판매를 했고 이것이 대단한 성공을 이뤘다.
이러한 성공을 앞세워 대대적인 보험설계사 모집을 하게 되어 내 또래 직장인들은 더러 지인의 권유나 청탁에 못 이겨 '장미빛 인생'의 라이프 플래너 교육을 받았었다. 그 교육의 효과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로 전향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도 어떤 선배가 딱 하루'만' 교육'만' 들어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휴가 내고 교육을 들었는데 내 적성에는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 선배의 청을 거절했다. 결국 그 선배와는 연락은 그걸로 끊어졌다. 종신보험 하나는 남긴 채.
군인일때 길을 다녀보면 유독 군인이 눈에 띄고 임산부는 길에 유독 임산부만 보인다고 하더라.
아마 자신의 관심사가 유독 한 곳에 집중 되어있기 때문에 같은 관심사의 대상이 눈에 먼저들어오는 것은 당연한것 같다.
요즘 내 눈에 내 귀에 자주 보이고 들리는 것은 '노후관리' '노후준비'같은 말들이다.
엊그제 회사 선배가 국내 여행 중 고창에 다녀왔는데 거기 거대한 실버타운이 조성되어 있다며 소개해준 얘기를 듣다 보니 나의 노후는 어떻게 되는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노후 준비 같은 게 제대로 되어있을리 없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열심히 살려는 생각이 있었을 뿐 은퇴를 하고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바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도 해놓은 게 없다.
결국 '노후준비'란 1. 금전적인 준비, 2. 건강의 유지, 3.시간을 유용하고 즐겁게 보낼 활동과 사람들 이렇게 3가지 일텐데 둘째, 셋째 문제는 아직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준비가 되어있으니 남은 것은 '돈'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20년 전 가입했던 종신 보험이 아직 굳건히 살아있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렇게 등떠밀려 들어뒀던 보험이 이제 앞으로 10년 뒤에는 매달 맛있는 것 한번 먹으러가고 여행한번 할 정도의 여력은 만들어준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싶었다.
그리고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이란 것도 알게 되어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해봤다.
한 순간 한 줄기 빛 (영어로 Silver Lining이라고 하더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25년 넘게 꾸준히 회사생활한 덕분에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면서 약간 삶의 자신감이 생겼다.
공식적인 정년은 아직 수년은 더 남았으니 지금부터 조금씩 생각하고 준비해보면 되겠지.
근데 무슨 준비를 하지?
아마 이러다 10년이 또 지나겠지. ㅋㅋ
'굶어 죽지는 않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날이다.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