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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

by SM

나이 50 중반이 넘어가면서 자잘한 걱정거리가 생긴다.


물론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이들이 생긴 탓에 여전히 자녀교육과 진로에 대한 '큰' 걱정거리가 남아있고 아직 정년까지 회사생활을 이어가야 하고 노후준비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취업,결혼,육아,주택구입 등 내 인생의 큰 이정표들은 많이 지나 온 편이다.


그것도 큰 굴곡없이 순탄하게 지내왔으니 다행이고 행운이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어서 이제 남은 것들은 '자잘한' 걱정거리들만 남았다.


자잘한 걱정거리 중에는 회사에서 혹시 내가 고집스러워 '꼰대처럼 보이면 어쩌나'하는 것도 있고 나이 먹었다고 뒷짐지고 멀뚱히 있는 것 처럼 수동적으로 보일까 하는 걱정도 있고 세대차이가 많이 나서 젊은 직원들 하는 얘기를 못 알아듣거나 내 얘기가 고루해서 나를 피하면 어쩌나 하는 것도 있다.


다만, 그런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걱정거리들은 더 만나고 듣고 배우고 습득하고 겸손하려는 마음 가짐과 실천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진짜 자잘한 걱정거리들이다.



탈모

20-30대에는 머리숱이 많고 앞머리까지 빽빽해서 이마가 좁아 보이는 것이 걱정이었다.

더러는 이마가 좁아 사람이 답답해 보이고 관상학적으로 대운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실제 앞머리 라인을 올리기 위해 족집게로 가운데 라인 머리를 살짝 살짝 뽑기도 했고 올백으로 머리를 일부러 드러내 보이도록 하기도 했다.


50대 이후 부지불식간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마는 넓어져서 답답한 이미지는 없어졌지만 풍성하던 머리카락이 사라지면서 폭싹 노쇠한 느낌이 들게 되어 이제 탈모 고민을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 대머리를 향해 달리던 친구가 머리카락이 풍성할 수 있다면 키 10cm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길래 갸우뚱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서서히 이해가 된다.


아직 탈모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혹은 머리를 심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지만 머리카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상과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서서히 어떤 대안을 세워야겠다는 절박감이 생긴다.



노안

이제 돋보기가 없으면 회사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돋보기 쓰고 일하다 누가 불러 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뜨는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의 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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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늘 돋보기를 잊지 않고 챙기기는 하지만 항시 지참하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 난처한 상황이 생긴다. 가령 누군가 자기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거나 문서를 보여주는 경우가 그렇다.


"나 노안이라 안 보여" 라고 말할 수 있는 편한 관계라면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기 민망하거나 껄끄러운 관계의 사람에게 나의 '장애'를 고백하기는 싫다. 눈을 찌푸려 억지로 보는 경우도 있고 대충 이야기 맥락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제약을 만들어낸다.

정서적 무력감이나 심리적 위축도 있지만 실제 책을 읽기가 싫어 지니 새로운 정보나 지식의 습득도 느려질 것이 분명하다.



염색

50대 들어와서 흰머리가 많아지더니 이제 염색하지 않으면 반백발이다. 아니 반 정도가 아니고 70%백발이다. 백발이 보기 싫지 않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두라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무리 봐도 흉하다.


외모적으로 흉한것은 둘째 치고 나를 보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불편이라기 보다 공경을 가장한 '노인네 취급'이 더 맞을 수 있겠다.

머리가 백발이면 '생기'가 없어 보이고 그러면 '자신감'이나 '적극성'이 없어 보이게 된다. 반대로 연륜이나 중후함에서 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꾸준히 염색을 한다.

물론 귀찮다. 미용실에서 가운을 뒤집어 쓰고 꾸벅꾸벅 졸면서 거의 2시간을 보내야 한다.

돈도 많이 든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이다.

몇 번은 너무 돈 아까와서 마트에서 염색약을 사다가 집에서 셀프로 해봤는데 그야말로 번거롭다. 염색이 잘 되는 것 같지도 않다.

또 몇 번은 커트는 따로 하고 염색방이라고 염색만 전문으로 해주는 곳을 가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냥 커트하면서 한방에 해치우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그나마 싼 집 찾아 2달에 한번 혹은 1달에 한번씩 염색을 한다.


위에 말한 득실이 뒤집히게 되면 염색을 중단하게 될까? 역시 딱히 답이 있는 걱정거리는 아니다.



냄새

예전에 회사 50대 상무님과 회의실에서 얘기하던 도중 심한 입냄새가 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고 그 분에게서는 뭐랄까 쾌쾌한 체취가 느껴져서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거기에 찌든 담배냄새까지…

하지만 아무도 그분에게 냄새에 대한 진솔한 불만과 고충을 건의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분의 냄새는 계속되었다.


지금 내가 그 걱정을 한다.

늘 혹시 나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늘 생긴다.

과학적으로 중년에는 어떤 물질과 작용 때문에 불쾌한 체취가 난다고 한다. 소위 홀아비 냄새라는 노화성 냄새이다.

아니 실제 냄새가 나지 않아도 냄새가 날 것 같은 중년의 아저씨가 된 이상 지금은 결국 어떻게 예방하거나 덜 느껴지게 덮거나 가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물론 잘 씻고 양치도 잘 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가끔 향수도 뿌리지만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나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누군가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

'냄새나는 아저씨'라는 오명을 뒤에서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젊어 지려는 것 보다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 이 모든 자잘한 걱정거리의 원인이구나.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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