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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44분

by SM

유리갤라!


1984년 대한민국 공중파 TV에 이름도 독특한 이스라엘 출신의 초능력자가 등장했다.

그는 TV에서 숟가락을 구부리고 고장난 시계를 움직이고 싹을 틔우는 초능력을 보여줬다.


그가 초능력을 선보일 때 당시 TV에는 시청자 중에 마찬가지로 숟가락을 구부렸다면 제보를 해달라는 전화번호 자막이 깔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숟가락을 구부렸노라고 제보전화를 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도 집에 숟가락을 들고 만지작 거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초능력이 없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유리갤라의 초능력에 대해서 강한 의심을 가졌고 뭔가 헛점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했었다.


결국 수십년이 지나 그가 보여준 모든 것들은 마술의 트릭이었고 사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하는 안도를 했었다.


그럼 집에서 자기들 숟가락을 구부렸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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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나는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믿지 않는다.


평생 한번도 점집에 가본적도 없고 흔한 사주카페에서 사주를 본 적도 없다.

누가 점집을 찾아 점을 치고 그것에 의지한다고 하면 좀 한심하게 보는 편이다.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같은 건 호기심이나 흥미로 읽어보긴 했지만 그것이 내 행동이나 결심을 바꾼적은 없다.


당연히 결혼할 때 궁합도 보지 않았고 어떤 날짜를 정할 때 길일이나 손 없는 날 이런 것을 고려해본 적도 없다.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도 작명소는 생각지도 않았고 무슨 한자 획수나 음양오행 이런 것도 따진 바 없이 부르기 좋은 이름을 후보로 나열해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survey를 해서 결정했다.


어떤 미신도 믿거나 빠져든 적도 없다.

흔히 사람들이 말해 온 미신 같은 것은 조심스러운 행동을 유도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문지방을 밟지 마라'는 것은 문지방에 발을 찧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 있는 것이고 '다리 떨지 마라'는 건 경박스러운 행동을 자제하라는 그런 뜻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이나 요행도 크게 바라는 편이 아니라서 내 돈내고 복권을 산 경험도 단 1번 밖에 없다. 유일하게 복권을 산 것은 2020년 쯤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나를 깨우는 꿈을 꿨는데 너무 생생해서 다음날 복권을 샀었다. 물론 꽝이었다.




올해 들어 여러차례 새벽에 깨서 시계를 봤는데 4시 44분을 목격했다.

오후에도 종종 4시44분 시계를 본다.


평생 그런 비과학적인 현상이나 미신 따위를 믿지 않았는데 여러 차례 우연이 반복되니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았고 불길한 징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나같은 사람이 많다. 심지어 어느 사이트에서 발견한 설문에서는 62%가 그렇게 느꼈다는 거다.

다운로드 (3).jpg 출처: 왜 유독 4시 44분을 자주 보는 걸까? | 취재대행소 왱

틀림없이 4시 37분도 봤고 4시 52분도 봤을 텐데 유독 4시 44분을 기억하는 것은 숫자 4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되살리면서 더 눈에 띄고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오후 4시44분은 회사에서 퇴근을 앞두고 가장 시간이 더디게 가는 때라 자주 시계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함이 있을 때 미신을 믿게 된다.

내가 요즘 4시 44분을 자주 보고 불길해 하는 것도 나약함에서 기인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이탓인가? 더 정신차려야겠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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