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인지 아니면 떠도는 풍문인지 알 수 없으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 때 점쟁이를 불러서 관상을 봤다는 얘기가 있다.
입사 시험 성적과 관계없이 얼굴 생김새나 표정, 눈빛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 말 입사 면접은 상당히 즉흥적이고 주먹구구식이었다.
심지어 음주 면접, MT면접, 나이트, 노래방 면접 등 다양한 형태의 면접을 시도하기도 했다.
면접관들은 면접 교육을 받은 바 없이 면접에 들어와서 아무 준비 없이 하고 싶은 질문을 했다.
개인적 신상이나 주로 의견이나 의지를 묻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질문에 대해 얼마나 임기응변을 잘 해서 재치있게 답하는지를 가지고 당락을 결정했다.
나도 대학 졸업 무렵 취업을 위해 여러 군데 입사 면접을 치뤘는데 처음 한 두번을 빼고 면접에서 탈락한 적은 없었다.
내 전략은 간단해서 허리 꼿꼿이 세워 앉아 질문하는 면접관 인중을 쳐다보고 목소리 크게 또박또박 말하되 질문과 관계없이 내가 준비한 얘기를 무조건 끼워 맞춰 답변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 내 필살기는 "어떤 장점이 있나?"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술먹다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는데 거의 대부분 면접관들이 껄껄거리면서 무척 좋아했었고 높은 점수를 줬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뒤 2000년대가 되면서 회사들은 그런 비과학적인 면접으로는 효과적인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대기업 중심으로 직무 중심, 역량 중심의 면접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면접 기법이나 Frame도 계속 진화하여 지금과 같이 구조화된 면접(Structured Interview), 행동중심의 면접 (BEI-Behavioral Event Interview), STAR 기법 ( Situation (상황) - Task (역할) - Action (행동) - Result (결과)) 등을 적용하기에 이르렀고 신변잡기나 생각이나 의지를 묻는 면접이 아니라 과거 행동, 경험 등을 질문하고 그 행동,경험이 얼마나 회사가 지향하는 인재상에 가까운지 확인하는 방식이 되었다.
엊그제 하루 종일 신입 사원 면접을 봤다.
인사업무를 오래하다 보니 면접관 역할을 한 것도 수십 번은 되는 데 시간이 갈수록 더더더 '잘 모르겠다'
최근에는 면접을 볼 때 마다 말 그대로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의 첫 취업 진로를 이렇게 확실한 판단도 안 되는 내가 큰 선택권을 가지는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꽤 한동안 면접관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다양한 면접기법, 방식 등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나름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서 몇가지 질의 응답을 통해 후보자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그 질문에 답을 정해놓고 후보자들에게 미끼를 던지듯 질문을 던져서 그 답이 비슷하게라도 나오지 않으면 점수를 낮게 줘서 떨어뜨렸다.
또 몇 마디 나눠보면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얼마나 능력 있고 똑똑한 지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몇가지 질문에 답을 정해놓는 방식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고 또 채용된 후보자들을 입사 후에 봤을 때 그 선택이 옳지 않았던 적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면접관으로 자신감을 서서히 잃게 되었다.
특히 요즘 후보자들은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너무나 철저하게 면접 준비를 하기 때문에 대답 못하는 후보자도 별로 없고 잘못된 답을 하는 후보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질의 응답에서 답변의 내용만을 가지고 변별력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물론 대부분 면접은 면접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고 단계도 여러 단계이고 기술이나 지식에 대해 별도 전형이 있으니 면접관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의 면접평가는 과학적 혹은 논리적 접근과 분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병철 회장님 면접장의 점쟁이에 더 가까워 지는 것 같다는 자책이 든다.
즉, 후보자가 말한 답변의 내용이나 정합성보다 후보자의 표정, 목소리톤, 발음, 제스처와 같은 어찌보면 지엽적인 포인트에서 차별점을 찾으려 하고 결국 최종 점수는 후보자의 전체적인 이미지나 잔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점쟁이 면접관이 되었다 생각하면서 나의 면접관으로 자신감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면접관 기회를 거절해보려고 한다.
관상보고 면접 당락을 결정하는 시대는 아닐테니 말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AI가 면접을 하면 훨씬 일관되고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우수한 인재를 걸러낼수 있을까?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