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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Feb 06. 2016

필요함=단골

"어? 새로 오셨어요?" 미장원에 들어섰는데 못 보던 분들이 일을 하고 계신다.

"여기 원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의아해하며 묻는 말에 다른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계시던 한 분이 머뭇거리며 말한다.  "파마하시게요?" "아니오, 그냥 자르기만 하려구요. 근데 원장님 안 계세요?"

"앉으세요~ 예쁘게 해드릴게요" "전, 원장님한테 하는데..."


자주 가던 동네 미장원은 그렇게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단골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가냐...!' 많이 서운했다. 서운하다 못해 배신감이 좀 들었다가 실망 낙담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 그 미장원만 다녔는데, 앞으로 또 어디를 가지?'

내 머리카락의 특성과 얼굴에 맞는 헤어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커트해주고, 머리가 푸석하면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말하면 여러 종류의 파마 중 잘 어울릴만한 파마로 척척 잘 해주는 사람이었다.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가버린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지척에  대중목욕탕이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시설이 좋은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수십 년 된 곳으로 언제 문 닫을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 두 곳 중 허름한 곳을 다녔다.  왜냐하면 그곳의 아주머니는 때를 정말 시원하게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아주머니도 어느 날 어디론가 가시고, 한동안 만족스러운 아주머니를 찾아 이 목욕탕 저 목욕탕을 기웃거리며 여러 아주머니에게 때를 밀었다.  때를 미는 손의 압력, 때를 미는 순서가 정형화된 아주머니를 만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팔을 밀었다 다리를 밀었다 순서 없이  여기저기 건드리기만 하는 분, 미는 건지 간지럽히는 건지 슬슬 슬슬 하시는 분.  그런 분들한테 받고 나면 내가 다시 밀어야 한다.  굳이 돈 내고 내가 다시 하고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불만족한 상태로 스트레스 받고 나오면 몸도 개운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 가게, 서비스는 내게 맞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네일케어를 마음에 들게 하는 사람,  입맛에 맞는 반찬을 파는 가게.  좋아하는 디자인의 옷을 파는 가게,  신발, 가방, 떡볶이집, 베이커리 심지어 피부과, 치과, 안과 등 병원도.  방송에 나온 떡볶이 집이라고 하여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서비스이든 맞는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을 찾기 위해 검색하고 가보고 체험하는 시간을 겪어봐야 한다. 그리고 단골로 간다.

비록 그 가게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직원 입장에서는 나를 다른 고객들과 똑같이 취급하겠지만 내가 만족하는 곳이니 가게 된다.  


사실 파마는 잘 하지 않고 헤어 케어 프로그램도 이용하지 않으며 두 달에 한 번쯤 자르기만 하러 가는 미장원, 한, 두 달에 한번 정도 들리는 반찬가게,  1년에 열 번 정도 갈까 말까 하는 네일숍, 몇 년에 한 번씩 비싼 레이저는 하지 않고 점을 빼거나 일회성 케어만 받는 피부과는 나를 우수고객으로 여기고 있지도 않을 거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업을 하면 속상하다.   다시 검색 단계를 밟아야 하므로.


얼마 전 눈이 이상하여 안과를  알아보았는데 어느 안과를 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어렸을 적 자주 갔던 안과가 떠올랐지만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안과는 지금 없기에.   선생님이 그 당시에도 이미 70대였다.  


몇 개월 전부터 어깨와 목이 너무 아경락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4년 전 다녔던 곳에 전화를 하니 그 원장님이 전화를 받는다.  샵을 어디로 옮기지 않고 폐업하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계신다고 한다.  물론 나를 기억 못하는 원장님이었지만 반가웠다.    

    

직장 동료의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어느 미장원에 다니는지 물어보고 가보았다.

커트 실력이 예술이었다.  머리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기만 하면 되었다.  드라이 빗으로 말지 않아도 되었고, 파마를 하지 않아도 볼륨감이 있었다.  그러다 파마를 하고 1년 가까이 그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  사무실 이전으로 멀어지기도 했고 파마를 하니 머리 손질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커트를 다시 할 때쯤 그 미장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 헤어 디자이너는 부원장이 되어 아직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말 반가웠고 너무 오랜만에 다시 찾아 미안하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했지만.     


필요할때만 찾게 되는 사람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아닌 사람들이지만,  그분들이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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