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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03. 2016

아빠의 케이크

우리 가족은 무뚝뚝하다.

명절에 모두 모여도 묵묵히 밥만 먹고 각자 방으로 흩어져 낮잠을 좀 자다가 남동생은 처가집으로 간다. 올케는 자신의 친정은 시트콤 찍듯이 왁자지껄 하다며 우리집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있다.


그렇게 무뚝뚝하다보니 표현을 제대로 못한다.

안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뿐더러 언제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즉 타이밍을 참 잘 맞추지 못하며 어떤 때는 왜 해야하는지 갸우뚱 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는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은 자식들 생일선물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미역국과 평소 먹지 않던 요리를 몇 가지 해주시는 것으로 생일을 보냈고, 가끔 용돈을 주셨다. 형제끼리도 선물을 하지 않았다.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쑥스러워 평소와 다름없이 보내는 일이 편했다. 그래도 가족으로부터 섭섭함을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


동생들이 결혼한 후에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으셔도 되었고, 그렇게 부모님이 우리들 생일을 챙기실 일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동생들이 결혼하고 몇년 동안 동생, 며느리 혹은 내 생일에 맞추어 다같이 모여 밥을 먹거나, 용돈을 챙겨주시거나  하셨다. 어느날,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미안해하시던 엄마는 앞으로 자식, 며느리, 손주 생일 모두 챙기지 않겠노라 하시며 각자 본인 가족들끼리 지내라고 하셨다. 혼자인 내게는 얼른 짝을 만나라 하시며... 그리고 정말로 그 이후로 누구의 생일도 기억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으시자 서운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도 생일이 반갑지 않게 되었다. 정신연령이 실제 나이를 따라가지 못해 불균형을 이루다보니 생일을 맞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일이 부끄럽고 아쉽고 슬프기도 했었다.


올해 생일 역시 부모님, 동생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생 가족의 생일을 먼저 챙겨본 적 없는 남동생이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무슨 바람이 분거지?'하며 의아했지만 기분 좋았다. 선물 따위 없지만, 잊지 않고 제 날짜에 축하해주니 기특했다.


그리고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생일이니 집에와서 밥 먹으라는. 아빠가 내 생일을 기억하시다니.... 엄마가 차린 음식으로 누구의 생일인지를 아셨던 아빠가!


주말 저녁에 들러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평생 처음 샀다'는 아빠가 사신 케이크를.

동생, 조카없이 두 분만 부르는 생일축하 노래를 들으며.  짝 없이 혼자 있는 큰 딸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거다.  눈물이 나는 걸 애써 감추며 케이크  사진을 찍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 휴대폰을 놓쳐 케이크가 뭉개졌다.

'칠칠맞지 못하다'고 엄마가 한 소리 하신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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