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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pr 21. 2016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공정한 세상은 오는가?

드라마 시그널의 명대사 중 하나다.

배우들의 연기가 실감 나고 구성이 촘촘하여 몰입하며 봤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건에 함께 분노하며.


정의롭지 못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드라마는 기존에도 있었다.  하지만 시그널이 더 공감 갔던 이유는 바로 이 대사.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그러고 보니 20년이 지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그대로 통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금수저, 흙수저로 분류하여 우월감, 부러움, 자포자기와 비애가 만연해진 세상.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으로 무서울 것이 없고 돈을 가진 자는 그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   


차라리 20년 전이 그나마 더 인간적이었던 거 같다. 그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많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하며 물질주의를 경계했다.  그리고 그때는 미안한 마음을 갖는 갑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엔 갑질을 하면서도 자신이 갑질을 하는지조차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비단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직장 등 모든 곳 - 돈과 권력이 있는 - 에 갑질이 존재한다. 내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잘 보이고자 하는 자세는 어쩌면 사회생활하는 인간의 기본 매너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도가 지나쳐 상호 존중이 아닌 소위 갑질 하는 갑과 당하는 을의 관계로만 남을 때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절이 싫은 중이 되든가, 적극적으로(?) 쥐약을 주고 공생 공존하거나, 당하면 울분을 토했다가 지낼만하다고 웃었다가 하며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  


용감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당당해지는 것. 드라마 "욱씨 남정기"처럼.

 


나는 어떠한가?

드라마처럼 시원한 한 방을 날리지 못하고, 절을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쥐약은 가치관에 어긋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시민일 뿐이라고 자조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공평하지 않은 일에 불만만 토로하며...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말.

그 말을 실천하기에는 좌절의 경험이 너무 쌓였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겠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똑바로 서자.

창경궁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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