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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un 14. 2016

노약자 좌석

#1. 버스 안

출근길 만원 버스.  

한 손은 의자 등받이를, 다른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겨우 서 있는 40대 여자. 그녀 앞 좌석에는 20대로 보이는 남학생이 자고 있다. 옆으로 뒤로 밀착되다시피 서 있는 사람들.  버스가 창경궁 정류장을 지날때쯤 자고 있던 남학생이 가방을 들고 일어난다.


앞에 서있던 여자는 옆으로 비켜서고, 그 남학생은 뒤로 돌더니 뒷걸음친다. 그리고 여자가 앉기를 기다린다. 움직일 공간이 없어 그런가보다 하며 여자는 먼저 자리에 앉는다. 남학생이 쉽게 내릴 수 있게.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여자는 문득, 그 남학생이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내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 남학생을 올려본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꽂고 있는 남학생.


'어? 내게 자리를 양보했던건가? 그러고보니 자리에서 일어날때 뭐라고 한 거 같기도 하네... 왜 양보했지?'


다시 고개를 들고 보니 잠깐 눈을 뜨고 어디쯤 왔는지 살피는 남학생.


'물어볼까? 왜 양보했는지? 배가 너무 나와서 임산부로 착각했나?  나이들어 보였나? 자리를 양보했는데 고맙단 말도 안했으니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욕하겠다... 이제와서 고맙다고 하기엔 한참 지났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양보한 이유를 물어보기도 그렇고... 자리를 양보 받을만큼 정말 그렇게 나이들어 보였나? '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여자.

그러다 남학생의 팔을 톡톡.  눈을 뜨고 이어폰을 빼며 보는 학생.


"가방 들어줄까요?"

"아뇨, 곧 내려요" 하며 문쪽으로 돌아서는 학생.


'가방 들어줄까 물었으니 최소한 자리를 양보해줘서 고맙다는 표현은 한 셈이겠지! 어?! 근데 또 안 내리네! 어디까지 가는거지? 나도 곧 내리는데...'


결국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게 된 두 사람.


'내리면 물어볼까? 왜 양보했냐고?  아니, 어떻게 이 옷차림을 보고 나이들게 볼 수 있을까? 어린애라 사람 나이 가늠을 못하는 게 아닐까? 이 원피스가 배 나와 보이나? 얼굴이 그렇게 늙어 보이나?'


버스는 정류장에 멈춘다.


#2. 버스 정류장

남학생이 먼저 내려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그 발걸음이 빠르기도 하고 여자가 가려는 길과 반대방향이어서 학생의 뒷모습을 한참 보는 여자.

그러다 목적지를 향해 돌아선다.


'자리양보를 받는 일이 이렇게  당황스럽고 심란한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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