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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Nov 21. 2021

죽을 줄 알고 내버려 두었던 나무를 키우기로 했다.

브런치 베타 서비스일 때 작가 신청을 하여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 두 번째 신청이 받아들여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첫 해인 2015년과 그다음 해인 2016년에는 내 안의 것을 쏟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자주 글을 쓰고 올렸다. 그러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면서 2017년부터는 일 년에 겨우 몇 번 글을 쓰고 올리다가 급기야 작년에는 하나만 썼다. 그랬기에 아마도 2018년부터는 매년 새해 계획으로 브런치에 글쓰기를 적었던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쓰기였다가 실천하지 못하고, 그다음 해에는 한 달에 한번 쓰기를 계획했지만 역시 지키지 못하고 또 그다음 해에 역시 최소한 한 달에 한번 쓰기를 작정했지만 또 못하고. 그래도 2017년, 2018년에는  "작가의 서랍"에 글을 써놓기도 했는데 2019년인가부터는 아예 브런치에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브런치 알림은 어느 순간부터 울리지 않았던 것인지, 혹은 알림을 보고도 그냥 지웠던 건지, 브런치 서비스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소식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릿속 한 구석에는 언제나 숙제를 끝내지 못한 학생처럼 항상 '글을 써야 하는데'라며 마음의 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가끔 동료나 아는 지인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하거나,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책까지 냈을 때 '아! 나도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하는데... 나도 책을 내고 싶은데...' 하며 자극을 받았다가 '과연 내가 그런 재능이나 있는 걸까?' 하며 주눅 들다가 곧 루틴 한 일상에 치여 후순위로 밀어버리고는 했다.


특히, 한 때 작가 지망생으로 4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가 "난 이제 글을 쓰지 않기로 했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결론지었었다. 작가 공부를 할 때 선생님들은 "재능이 있으면 좋지만, 재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끈기와 성실함, 꾸준함이 있으면 된다"라고 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이미 터득하고 있지만 그래도 작가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글 쓰는 일을 한 켠으로 접어두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회사에서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심리 상담을 받았다. 나이 들면서 점점 불안해지고 예민해지는 상태를 알 수 없어 그 문제를 상담하려고 갔는데, 그런 문제들을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 얘기를 하게 되었고 "번 아웃(Burn Out)"이란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주체할 수 없었다. 회사 생활하면서 몇 번의 "번 아웃"을 겪었고 최근의 것은 2년 전쯤에 있었는데 그건 다 극복했다고 믿었었다. 비교적 마음이 평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다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의 내 직업은 내가 원한 것도 맞고 그걸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내 "꿈"은 아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번아웃 증후군과 함께 꿈과 현실의 괴리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 회사를 다니면서도 작가가 되고 싶어 공부했던 4년이란 시간, 회사를 다니면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으니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작가가 되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 동안 여행 갔던 시간. 그런 시간들이 떠오르며 머릿속 어느 구석진 곳에 처박아 놓았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심리 상담 선생님이 "지현님에게는 두 개의 나무가 있었는데 한 나무는 곧 죽을 것 같아서 물도 안 주고 영양제도 안 주고 그냥 놔두었고, 또 한 나무는 키울 생각은 못했던 나무지만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정성을 다해 키워서 열매도 맺고 꽤 큰 나무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키우고 싶던 나무는 그 죽을 줄 알았던 나무였던 거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나름 성공한 삶이니 이게 원하던 것인가 곱씹지 말고, 요즘에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으니 꼭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얘기를 풀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제야 브런치에 다시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고, 쓰려고 했던 주제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랜만에 들어와 그간 올렸던 글을 쭉 보고, 통계도 한번 들어가 보았다. 일간 숫자는 매우 저조하지만 그래도 "0"인 날은 없고 심지어 전체 글 조회수는 11만을 넘어있다. '와~ 이렇게나 많이 읽혔다고!' 그러다 글 랭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의 공유수가 600회를 넘는 글이 있었다. '세상에! 공유수가 300회가 넘는 글도 있네!' 모두 한창 글을 열심히 쓰던 2015년의 글. '내 글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구나' 싶어서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꿈이 작가였을 때는 작가로 성공해야 한다고 여겼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그 나무를 키우지 않았다. 잘 자랄 것 같지 않아서. 그런 싹이 없다고 생각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그런 성공한 작가에 대한 열망보다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커서 글을 썼다. 쓰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아서. 내 안의 얘기를 풀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심리 상담 선생님의 말처럼 그리고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처럼, 글을 쓰는 자체로 마음이 치유되고 안정되는 걸 느낀다. 이것으로 행복하다. 그러니 죽을 줄 알고 내버려 두었던 나무를 키워야겠다.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어 무럭무럭 자라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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