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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Feb 14. 2022

평범한 삶

'평범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또한 외모적으로 두드러지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유명인 등은 평범하지 않기에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평범한 일상은 아마도 대중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어디든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일상을 지내는 것이라면 난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소시민으로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사는 삶이 평범한 것이라면 지금 충분히 평범하다.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 즉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기르고 키우는 삶이 평범한 것이라고 하면 눈곱만큼도 평범하지 않다. 친구들이 하나 둘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도, 내 삶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던 시기까지는 친구들과 비슷한 시간대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나만 친구들과 같이 서 있던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고 그들은 내 앞을 질러 저만치 멀리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들이 돌잔치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 시간대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부터, 나와는 다르다는 걸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를 잘 떨다가도 아이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나는 모습을 보거나, 아이와 다정하게 통화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학창 시절의 그 친구가 한 아이, 한 인간의 우주가 되었다는 생각에 신기했었다. 내가 엄마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친구는 엄마가 되어 그걸 해주고 있다니...


그렇게 친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엄마, 아내 역할에 변화를 꾀하며 인간의 인생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데, 난 그대로다. 삶의 변화가 없다. 회사는 십 수년 째 다니고 있고 (물론 몇 번 옮겨 다녔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고 (중간에 몇 년씩 독립했던 기간도 있지만), 심지어 활동 반경도 이십 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십 년 전에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미혼여성, 미혼남성을 노처녀, 노총각이라고 불렀다. 간혹 노처녀를 올드미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노총각을 올드 미스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결혼 적령기를 넘겼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있는 여자에 대한 시각이 남자에 대한 것보다 더 날카로웠던 시대의 호칭이려니 한다. 이 호칭 속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는데, 세상의 순리를 따라가며 살고 있지 않은 낙오자처럼 보는 시각이 그런 시선 중의 하나였고, 당사자들은 뭔가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처럼 혹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다.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는 말이 나오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국가가 세계화를 얘기하면서 노처녀라는 말은 골드미스라는 말로 바뀌었다. 경제력을 갖고 있으나 결혼하지 않은 독립적인 여성을 일컫는 말. 이때도 동일한 조건의 남성을 부르는 호칭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골드미스터’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남성은 '독신주의자'라고 포장되었던가? 그냥  '싱글(single)'로 불렸던가?


요증은 비혼주의자로 부른다. 비혼주의자는 혼인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통용되는 의미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든 못한 것이든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사람을 일컫는 것 같다. 달라진 호칭만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보는 시선도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시각이 그러한데, 그래서인지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삼십 대, 사십 대 때는 그렇게 말하면 상대가 나를 아주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거나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창피한 마음이 들어 처음 보거나, 두 번 볼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결혼했다고 거짓말한 적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결혼한 줄 알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안 했다’고 말하지 않은 적도 있다. 결혼을 함으로써 그 사람이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연예인의 경우도 결혼으로 이미지가 더 좋아지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을 더 좋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미혼’이라고 밝히는 일이 더 당당해진 걸 보면, 내 나이에서 오는 초월함도 있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그만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 더 이상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나만 혼자 자연의 순리, 인간이 살아가는 순서를 따라가고 있지 않다는 부분에서는, 무척 평범하지 않음에 우울해질 때도 있다. 이십 대부터 혼자 여행 가고 영화를 보러 가거나 식당에 가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혼자 다니는 사람을 참 이상하게 쳐다보던 때였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혼자 가지 못한 곳은 없다. 혼자 가는 일이 재미없어서 같이 갈 사람을 찾은 적은 있어도. 지금은 혼자 할 때보다는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들수록 혼자는 재미없기도 하고 좋은 것을 먹고, 보고, 체험하게 될 때면 부모님, 형제, 조카들이 생각나기 때문에 같이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부모님과는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더 같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결국 남는 건 나 혼자 일 것이란 생각에 슬퍼질 때가 있다.       


혼자 늙어가고 있다는 것.     


결혼한 친구들은 결혼해도 외롭고 결국 혼자인 건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들에겐 남편과 자식이 있으니 늙고 병들었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을 확률이 높다. 가끔 이런 우울한 얘기를 할 때, 친한 후배는 "그러니까 같이 모여 살아요"라고 하는데 자식이 있는 후배와 과연 같이 살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진지한 성격의 나로서는 선뜻 “그러자”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농담으로라도 “그러자”며 맞장구를 쳐도 되는데 말이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하기는 한다. “그래서, 내가 조카한테 자주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잖아. 이모 늙었을 때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큭큭큭”  이런 주제의 대화를 나눈 후의 결론은 항상 ‘늙어도 혼자 살지 않으면 된다’이다. 사람들과 섞여 살면 고독사 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으니 실버타운에라도 들어가면 된다고 하면서 우습게도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나면, 내 인생이 무지 평범하게 느껴진다. 결혼한 친구들이든 하지 않은 친구들이든 늙어서도 잘 살려면 경제력을 갖추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게 건강 관리 잘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외롭지 않게 지내고 등등을 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것들은 사람의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서 참 평범하구나라고 새삼 깨닫는다.  그런 면에서 내 인생은 참 평범하다.


그러고 보면 사전적 의미로 ‘색다른 점 없이 보통이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무엇 하나는 색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경우, 무엇이 보통일까. ‘평범하게 사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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