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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May 15. 2022

고수가 되고 싶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으며 위로받고, 때로 깨달음도 얻기 때문이다. 매 회 꼬박꼬박 챙겨 볼 수는 없지만,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거나 까르르 웃게 만드는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중, 사진작가 ‘김명중’이 해 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일화는 귀에 쏙 꽂히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일화는 이렇다.     


김명중 사진작가가 처음 폴 매카트니의 전속이 되었을 때,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그리 열심히 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사진에도 그런 마음 상태가 반영되었지만 좀처럼 예전 마음을 먹기가 어려웠다. 그 무렵 폴 매카트니가 한마디를 건넸는데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폴 매카트니가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네가 찍은 사진이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무슨 일 있어?”     


얼마나 품격 있고 우아한 말인가. 나였다면 이런 식의 말을 했을 것이다. “사진이 왜 이래? 이게 뭐야! 요즘 집중 안 하지! 이렇게 일할 거야?” 등등의 직설적이면서 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말들을 내뱉었을 것이다.      

“너의 사진이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평소의 생각, 말, 행동이 쌓여 그 사람을 만들듯이, 이런 격조 높은 말은 단번에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배운 선배들의 행동에는 상대방을 ‘쥐 잡듯’ 하는 것이 있었다. ‘을’로 취급되는 거래처, ‘아랫사람’으로 일컫는 회사 동료가 일을 잘 못 처리하거나 실수를 하면 그게 무슨 큰 죄라도 되는 듯 마구 소리치며 야단을 쳤다. 자신은 그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인 양 으스대는 마음을 담아, 평소 갖고 있던 스트레스를 함께 풀면서. 뭣도 모르고 그런 모습을 ‘멋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저렇게 권위를 드러내야 하는 거구나!’, ‘그래야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구나!’라고 여겼었다. ‘을’의 거래처와 후배 동료에게 ‘호구’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그걸 따라 한 적도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위로 올라가려면 그런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까지 여긴 적이 있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아니 세상이 망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어? 회사일 좀 잘못한 거 갖고 저렇게까지 소리치고 난리 칠 필요는 없잖아! 막말로 사람을 죽였어도 저러지는 못하겠다!”라며 그 당시 선배의 행동을 욕하던 동료 직원의 반감 어린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야말로 무지(無知)에서 오는 무조건적 수용이었다. 지금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시절 나와 일했던 직원들을 떠올릴 때면, 그들은 나를 그때 그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럽다.     


그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한 건,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는 만큼 학습한 것들이 쌓이게 되면 서다. ‘갑’으로 불리는 거래처와 일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게 되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일을 한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일’을 바로 잡는 데 먼저 집중하는 사람을 보면서, 큰 소리 내지 않고도 일을 잘 처리하는 다른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 사수의 행동은 ‘하수’의 행동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의 위치가 나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회사의 권위와 명성, 환경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잘난 줄 알았던 건 큰 착각이었음도 알았다. 그 후 정말 내가 하는 일은 아무리 실수해도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일이 아니란 점을 상기했다. 물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므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렇지 못한 직원을 보면 지적하고 가르쳐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상대방 마음이 상하지 않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때때로 ‘비난’이 섞인 말을 하지 않기는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대충 고수의 흉내를 내볼 수는 있다. 말을 천천히 하고, 겸손한 말과 행동을 하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고수인가?’ 싶어 설렜던 적이 있다. 그들 대부분의 ‘본색’을 바로 알게 되어 실망했지만, 암튼 겉으로는 우아한 모습을 따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집에서는 겉모습만 흉내 내기도 어렵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같은 감정에 휩싸여 화가 날 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인상 쓰며 말하지 않고, 원초적인 단어로 상처 주는 말을 자제하고, ‘화’를 불러일으킨 ‘그 일(사건, 문제 등)’에 대해서만 차분하게 말할 수가 없다. 가족 중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기기가 어렵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부족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지적하고 비난한다. 그가 회사 동료였다면 최소한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고수’는 안과 밖이 일치하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뼈 때리는 말’을 대놓고 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는 주지 않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다. “너의 사진이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와 같이  ‘팩트(fact) 폭격’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다치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아마도 이번 생에서 그런 ‘고수’는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 ‘하수’는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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