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거금 주고 헬스장 등록했어요
운동과 식단 이야기 II
매년 건강검진을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았다. 20대 때부터 높았는데 약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별다른 경각심 없이 늘 먹던 대로 살았다. 오십을 코 앞에 둔 어느 날, 콜레스테롤 수치를 약으로 조절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약 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동네 가정의학과를 찾아가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주고 약 처방을 받았다. 약 처방을 받는 그날, 의사가 '하루 한 알'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다. '평생'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일었으나 '영양제 먹는 셈'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설득이 되어 먹기 시작했다.
약 먹은 지 한 달 후의 피검사 결과, 모든 수치는 정상범위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음식 조절이나 운동한 거 없이 이렇게 정상이라니!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부작용도 없어서 그 후 3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를 하며 약을 복용했다. 그러다 피검사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했지만, 약 처방은 늘 3개월마다 받았다. 약에 익숙해지면서 매일 먹어야 하는 걸 이틀에 한번 먹기도 하고, 약이 다 떨어지기 전에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일주일 정도 공백기를 갖기도 했다. 약 복용은 힘든 건 없었지만 지겨웠고 싫었다. 이렇게 평생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은 내가 '고지혈증' 환자임을 상기시켜 주어 불쾌했다. 또한 약을 장복할 경우 나타날 수도 있는 부작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피검사 결과에 혈당 수치가 높게 나왔다. 공복혈당이 100을 넘었고 당뇨를 진단하는 주요 지표인 당화혈색소 검사는 5.5가 나왔다. 이후 3개월에 한 번씩 갈 때마다 혈당검사를 했는데 105, 110도 나왔다. 고지혈증 약의 부작용인가 물었더니 단언할 수 없다고 하며, 당뇨는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예방이 가능하니 추적관찰을 잘하자고 했다.
처음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아했었다. 뚱뚱하지 않고 고기 좋아하지 않고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왜 그럴까 했지만, 탄수화물 섭취가 큰 문제였음을 알았다. 밥 이외의 간식을 잘 먹지 않았지만 일단 밥 양이 많았고, 아침을 거르고 저녁을 늦은 시간에 많이 먹었다. 빵, 떡을 좋아해서 밥 먹고 빵 먹고, 밥 먹고 떡 먹고를 잘했다. 나름의 이유를 발견한 후로는 빵과 떡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당뇨 수치까지 높게 나오자 더럭 겁이 났다. 당뇨는 내가 알고 있는 질병 중 제일 불편한 질병 중 하나인데, 완치되지 않고 평생 음식조절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조절은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당뇨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회사 동료 중에 단기간에 10kg 정도 살을 뺀 동료에게 비법을 물었더니 걷는 게 제일 효과 있고 좋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날 아침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운동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방법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걷기'라는 말을 듣자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바로, 퇴근을 걸어서 했다. 다행히도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지 않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는데 첫날은 45분쯤 걸렸다. 그 후로 매일 퇴근은 걸어서 했다. 그 해 4월에 시작해서 8월까지 4개월을 꾸준히 하며, 걷기 편한 운동화와 운동복도 마련했다. 출근복을 그대로 입고 걷기에는 땀에 젖기도 하고 아무래도 불편하여 평생 처음 레깅스 운동복을 사 입었다. 배를 꽉 잡아주어 걷기에 편하고 몸매도 보정해주는 느낌이었다. 걷는 코스는 퇴근길의 지루함을 달래고자 4개 정도 만들었다. 그러나 야근 후 9시나 10시에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 코스는 평소에도 이용하지 않는 코스가 되어 자연스럽게 탈락되었다. 나머지 3개 코스는 어느 코스이든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는데, 아무래도 걷기에 지루하지 않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코스를 선호하게 되었다.
4개월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걸었다. 오로지 당뇨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이참에 살도 좀 빼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른쪽 발목 뒤쪽이 아파왔다. 허리도 가끔 아팠다 안 아팠다를 반복했지만, 그건 참을만했다. 하지만 오른쪽 발목은 점점 아파왔다. 그 시기에 왼쪽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일까지 겹쳐서 한방병원에 침을 맞으러 다녔다. 한의사가 당분간 걷는 걸 멈추고 쉬어보라고 했는데 계속 걸었다.
운동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처음 해 본 것은 삼십 대에 러닝머신을 타 본 것이었다. 그 당시 회사 건물 맨 위층에 헬스장이 있었는데, 헬스장 다니는 게 유행하던 때였다. 어떤 생각으로 등록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생전 처음 보는 기구들은 낯설어서 만질 엄두도 나지 않고, 그저 러닝머신만 눈에 익숙하여 무작정 그 기계에 올라탔다. 걷다 달 리다를 30-40분쯤 했는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어지러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이후 등록비가 아까워 몇 번 갔지만, 할 수 있는 건 러닝머신을 타는 일 밖에 없어서 곧 흥미를 잃었다. 러닝머신은 세상 재미없는 운동이었다. 게다가 움직이는 러닝머신 위에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달리기를 멈추는 바람에 뒤로 넘어져 크게 다칠 뻔한 적이 있던 후로는 아예 가지 않았다.
그 후 꾸준히 운동한다고 하는 것은 요가였다. 잠깐 백수 시절에, 같은 백수였던 친구가 요가를 다니자고 해서 다녔다. 정적이면서도 몸의 유연성을 기르고 명상을 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 6개월 정도 주 3회씩 열심히 다녔는데, 몸의 라인이 좀 살아났었다. 옆구리 군살이 좀 정리되는 듯하여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주 1, 2회를 하려고 노력하다가 혹서기와 혹한기에는 하지 않았다. 실내 운동이라서 덥고 추운 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요가하러 오고 갈 때 힘들다며 혼자 그렇게 합리화를 시켰버렸다. 그래도 1년에 6~7개월, 주 1~3회 정도 10년 이상 요가를 했는데 소득은 별로 없었다. 자주 갈 때는 유연성이 좋아졌지만 3~4번 빠지고 가면, 몸 상태는 원복되어 잘하던 동작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제자리~~ 그럼에도 격렬한 움직임 없이 주로 눕거나 앉아서 하는 동작들이 좋아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은 '요가'라고 여기며 꾸준히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생겨 요가 강좌가 없어졌다. 마침 당뇨 수치로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돈 들이지 않고 내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걷기'로 살을 빼고 위험 수위의 건강 수치를 낮추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침을 맞으면서도 걸었다. 그런데 몸무게 변화가 1도 없었다. 아니 1~2kg 정도 빠졌다. 그런데 이 정도는 좀 먹으면 금방 다시 돌아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체감상 1도 빠지지 않은 것 같았다. 걷기를 한 후부터 아침으로 삶은 계란 하나를 먹기 시작했고, 퇴근 전에 간단하게 요기를 하여 집에 도착해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어떤 날은 저녁을 아예 안 먹었다. 그런데 몸무게 변화가 크지 않았다. '땀도 많이 빼는데 왜 그런 것일까?' 의아했다. 나름의 생각으로 내린 결론은, '워낙 잘 찌지 않는 체질이니 빠지는 것도 잘 빠지지 않나 보다'하며 일단 무작정 더 걷기로 했다.
그 사이, 고지혈증 약을 다 먹었는데 처방받으러 가지 않았다. 이렇게 운동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고 피검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 싶었다. 내 생애 처음 땀 흘리며 운동 다운 운동을 했다고 여겨서 결과가 자못 궁금했다. 그래서 매년 10월이나 11월에 하던 건강검진을 8월에 했다.
건강검진을 같이 하러 간 회사 후배가, 몸무게가 빠지지 않는 내 운동 얘기를 듣더니 '체지방'을 빼는 게 중요하다며 둘이 같이 PT를 받자고 제안했다. 그 후배는 마른 편인데 '저도 나이 드니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 체지방이 느는 것 같아요'라며 2:1 PT를 받으면 요금도 저렴할 것이라며 유혹했다. 난 운동을 참 싫어하는 데다가 살 빼기 위해 돈 들이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대답은 '그럴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마 그 앞에서 '돈 들어가니 싫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진 다음날, 회사 앞에 있는 헬스장으로 바로 갔다. 금액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2:1이어도 꽤 비싼 가격이었고 헬스장 등록비는 또 별도였다. 일단 점심 먹으며 생각을 해보자고 후퇴했다. 후배가 이 기회에 운동을 제대로 해서 체지방을 줄여보자고 계속 권했다. 큰돈이지만, 그만큼의 결과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 투자해야 더 열심히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유병장수의 시대라고 했지만, 당뇨에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고지혈증 약도 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처음으로 운동에 거금을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