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당뇨병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무작정 퇴근길 ‘걷기’를 시작하며 ‘돈 들이지 않고 걷기로 살을 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4개월 간, 땀을 많이 흘리고 저녁도 좀 덜 먹었는데 실질적으로 빠진 몸무게는 없었다. 남들은 2-3개월만 걸어도 살이 쭉쭉 빠졌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거의 매일 퇴근길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고지혈증 약이 떨어졌지만, 다시 처방받으러 가지 않았다. 걷기 운동으로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8월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콜레스테롤 수치는 270, LDL(저밀도, 나쁜 콜레스테롤) 186, 중성지방 118, HDL(고밀도, 좋은 콜레스테롤) 60으로 총 콜레스테롤 수치와 LDL은 높게 나왔으나 중성지방과 HDL은 정상범위 안에 드는 수치였다. 수치가 괜찮다는 자체 판단을 했다. LDL은 130 미만이 정상이라고 하는데, 약을 먹기 시작할 때의 수치가 200이 넘었기 때문에 걸은 효과인지, 아직 약 효능이 남아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좀 더 운동하면 수치가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당뇨 수치는 확실히 좋아졌다. 공복혈당 90, 당화혈색소 4.9로 안심할 수 있는 정상범위였다. 여기에 PT를 시작하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후배와 2:1 PT는 9월 중순부터 시작했다. 큰 마음을 먹고 거금을 들여 건강검진 다음날 바로 등록했지만,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에 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고 잘 다니지 않게 될까 봐 심적으로 좀 부담스러워서, 운동 시작은 더위가 좀 사그라든 다음에 하자는 엉뚱한 제안을 하여, 한 달 간의 유예를 두었던 것이다.
PT를 시작한 후에도 집으로 가는 길은 걸었다. 후배와 집 방향이 같았는데도, 기필코 체지방을 빼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PT 끝난 후에 집까지 걸었다. PT는 주 2-3회를 했다. 10월쯤 되자 PT를 받는 것도 좀 익숙해지고, 걷고 나면 몸이 가벼워서 기분도 좋았다. 그러던 중에 왼쪽 팔과 다리가 살짝 저린 느낌이 들었다.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주무르게 되고, 왼쪽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피 통하게 하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오른쪽과 비교하여 확실히 뭔가 정상은 아닌데, 그렇다고 막 저리지는 않지만, 기분 나쁘게 저린 것이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데 정상은 아닌 느낌이었다. 하루, 이틀 그러고 말겠지 하던 증상이 거의 일주일간 느껴졌다. 건강염려증이 좀 있는 나는, 겁이 또 덜컥 났다. 의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고지혈증 약을 끊어서 그런가 싶었다. 걸을 때 오른쪽 발목 뒤쪽이 아픈 건 침을 맞았더니 좀 나아졌었지만, 여전히 아픈 상태였다. 왼쪽 어깨는 ‘회전근 건초염’으로 정형외과에서 수개월째 물리치료를 받다 안 받다 반복하고 있었고 한방병원에서 침도 맞을 때였다. 왼쪽 어깨에 힘을 줄 수 없어서 PT 할 때도 왼쪽 어깨를 쓰는 운동은 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아픈 와중에 운동으로 이 모든 걸 이겨보겠다고 굳은 의지를 갖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몸무게 변화는 없고, 아픈 건 그대로이던 차에 왼쪽 팔과 다리가 저린 증상까지 더해지자 겁도 났지만,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고지혈증 약을 먹지 않아 생긴 증상인 것만 같아서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운동 이야기를 듣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일방적으로 약을 끊은 나를 나무랐다. 그러면서 팔, 다리 저림 현상은 꼭 혈액순환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의사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까 약을 먹어서 그 확률을 낮추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그 질환에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수치가 높고 약을 먹지 않는다고 꼭 그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며 운명론적 말을 했다. 결론적으로 병에 걸릴 사람은 걸리고, 그렇지 않을 사람은 걸리지 않는다는. 다만, 우리는 수치를 낮추는 약이 있으니 그걸 먹고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추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운명론적 발언을 하다니 좀 무책임한 말이다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약을 처방하고 치료하는 일이지, 근본적으로 그 병에 걸리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넉 달 정도 약을 복용하지 않고 검사한 결과 LDL의 수치가 엄청 높게 나왔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294. LDL 206, 중성지방 118, HDL 64. 중성지방과 HDL 수치는 정상이었으나 LDL 수치가 200을 넘어 심각했다. 의사는 기존에 먹던 5ml 약을 10ml로 올려 처방해주었다. 약을 끊어보겠다는 결심은 그렇게 약의 용량을 두 배로 올리며 처참히 무너졌다. 처음 고지혈증 약을 먹을 때도 LDL 수치가 215였다. 의사는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도 LDL 수치가 그리 높지 않으면 약을 권하지 않고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해보자고 권한다. 중성지방과 HDL은 그렇게 조절될 여지가 있지만, LDL은 약으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는 얘기를 했다. 그리하여 열심히 걷고 PT를 하며 체지방을 빼는 일은 의미 있지만, 고지혈증 약을 끊는 것과는 별개임을 깨달았다. 새로 처방받은 약이 몸에 잘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월에 피검사를 했더니 또 드라마틱하게 수치가 모두 내려갔다.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171. LDL 85, 중성지방 115, HDL 63.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의 중성지방, HDL 수치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LDL은 확실히 약효가 있었다.
고지혈증 약 복용 전후의 콜레스테롤 수치
그 후로 PT를 주 2-3회 받고 혼자 자전거 타기를 하는 등 실내 운동 위주로 하고, 집까지 걷는 일은 점점 관두게 되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도 한몫했다. 운동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튜브로 홈트 영상을 찾아보며 가끔 집에서 운동하는 일도 생겼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헬스장이 6주 정도 문을 닫았다. 운동을 습관 들이려 노력하던 때여서 무척 아쉬웠다. 홈트를 하면서 익힌 운동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주 1-2회 정도였다. 연말연시여서 살찌는 음식을 거부하기 힘든 때에는 ‘오늘만이야’라고 위로하며 지냈다. 걱정이 들 때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기도 했지만, 내 몸은 바로 예전의 습관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움직이기 싫고 운동하기 싫은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