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혈증은 과연 완치될 수 있을까?

운동과 식단 이야기 VIII

by 지홀

“우리말은 잘 안 듣고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남의 말은 잘 들어요” 고지혈증 때문에 매번 가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사람들은 왜 의사가 하는 말보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고 하는 검증되지 않은 온갖 영양제와 음식 얘기를 맹신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는다는 말이 맞는다. 고지혈증 약이 일으킬지도 모르는 부작용 (그것도 장복해야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는)에 대한 걱정이 지나친 나는, 의료계에서 검증한 약을 먹기보다 운동, 식이요법, LDL을 낮춰준다는 각종 음식과 영양제를 먹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아마도 음식과 영양제는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기능은 없을지 몰라도, 먹는다고 몸에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콜레스테롤은 어떻게 되지 않는다 해도 운동하고 채소 많이 먹고 단백질을 챙겨 먹는 일이 최소한 고혈압, 당뇨병에 걸리지 않게 할 것이라는 믿음. 그러니 콜레스테롤 저하에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혹은 요행(?), 그런 마음으로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에 오메가 3 같은 콜레스테롤 개선 영양제로 널리 알려진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오메가 3 챙겨 먹을 정성으로 고지혈증 약 한 알 먹고 편히 살라”고 했었다. 결국 뭔가를 먹어야 한다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영양제를 먹을 게 아니라,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실히 낮춰주는 약을 먹는 편이 낫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얘기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도 영양제는 부담스럽지 않은데 약이 부담스러운 건 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약에 대한 거부감으로 고지혈증 약을 일방적으로 또 끊었다. 올 6월에 약이 다 떨어졌는데 처방받으러 가지 않았다. ‘체지방을 줄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몸무게를 더 줄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운동을 했다. 분명 의사가 콜레스테롤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내 의지로 열심히 하면 수치를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버텼다. 10월에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는 당연하게도 높은 수치였다. 총콜레스테롤은 역대급으로 높게 나왔다. 중성과 HDL은 정상 수치였으나 LDL 수치가 심상치 않았다. 마음은 좀 불안했지만, 예전 의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약을 먹어서 수치가 낮다고 동맥경화나 뇌졸중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고, 반대로 약을 먹지 않는다고 꼭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확률 싸움이기 때문에 약을 먹고 안심하며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말도 했었다. ‘그래, 수치가 높다고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야’라고 마음을 다졌지만 역시 불안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은 의사 선생님에게 받을 질책(?)이 좀 싫기도 하고, 약 없이 해결하고 싶은 내 의지를 잘 들어줄 다른 의사 선생님과 상담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검진 결과를 가지고 다른 병원에 갔다. 그 병원의 선생님 역시 LDL 결과지를 보더니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 “이 정도 수치면 의사가 처방을 하게 되어 있다.”라고 했다. 나는 30대부터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내밀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만 보이도록 엑셀로 정리한 결과지였다. “제가 HDL, 중성지방은 계속 정상이었거든요. LDL만 높은데 약을 먹지 않고 나을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했다.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경동맥, 동맥경화 검사를 하며 상태를 점검할 수는 있다”며 “약 먹으면 좋아지는데 검사 비용 많이 드는 일을 하겠느냐?”라고 했다. 나는 약의 부작용이 걱정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했더니, 엑셀표를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던 선생님이 약을 먹기 전의 수치 중 가장 좋은 수치가 언제였는지, 수치는 어떠했는지를 질문했다. 145라는 수치를 보더니, 음식으로 한번 조절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다. 콜레스테롤은 유전적 요인이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그게 없다면 6개월간 식단을 관리해보고 다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영양사를 연결해 주었다.

영양사는 나의 평소 식습관을 파악하더니 완전 "빵점 짜리" 식단이라고 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름 적게 먹으려고 하고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먹으려고 했는데 실천을 잘한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몸무게가 줄고 체지방이 줄어서 제법 잘 조절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식습관을 가져간다면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빵점”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영양사는 채소를 많이 먹지 않았다면서 매 끼니 채소를 한 접시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먹는 순서도 채소나 과일을 먼저 먹고 단백질을 먹고 맨 나중에 탄수화물을 먹으라며 각 끼니당 먹어야 하는 각각의 그램(g)도 알려주었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어떻게 먹을 때마다 일일이 그램을 재서 먹어요?”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영양사는 어려우면 ‘밥 한 그릇’을 기준으로 삼으라면서 밥그릇 크기를 보여주었다. 밥은 무조건 반 그릇만 먹고, 채소는 한가득 먹으라고 했다. 그제야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 밥 한 그릇을 기준으로 양을 가늠하는 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양사로부터 '예시 식단'표를 여러 개 받았다. 콜레스테롤에 좋은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그건 염두에 두지 말라고 했다. 먹고 싶은 건 다 먹되 양을 많이 먹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좋다는 것만 먹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렇게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절될까요? 했더니 가능하단다. 영양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그 이튿날로 바로 시작했다. 양배추, 표고버섯, 토마토, 당근, 브로콜리 등으로 밥 한 그릇, 접시 한 그릇을 가득 채워 먹었다. 꾸준하게 먹던 삶은 계란도 계속 먹고 채소/과일>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를 지키면서 먹으려고 노력했다. 아침마다 들기름도 작은 스푼 하나만큼 먹었다. 매일 아침 배달시켜 먹던 프로틴 음료는 끊었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 프로틴 요거트를 배달시켜 먹었다. 밥은 점심때만 반 그릇을 먹으려고 했지만 어떤 날은 3/2까지 먹었다. 빵, 면, 떡은 딱 끊었다. 약 한 달 동안은!. 면은 끊을 수 있었는데 빵, 떡은 좀 힘들었다. 회사 행사로 '양식'을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 그 식전 빵을 외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여행 가서 호텔 조식을 먹으며 맛나 보이는 빵과 디저트로 나온 떡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어쩌다 한번 먹는 거야'라는 유혹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지키기 어려움에 고개를 몇 번 떨구었다. 특히 12월은 행사, 모임, 여행으로 제대로 식단을 관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의 눈물겨운(?) '참는 모습'에 어떤 친구는 그냥 "약 먹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먹지 마"라며 먹으려는 나를 붙잡았다. 마음 편히 먹고 싶은 것 다 먹고살라는 친구나, 관리하기로 했으면 잘 지키라는 친구나 어느 쪽이든 내 사정을 이해하고 있어 '식단 관리' 한다는 말을 하기 편안하다. 집에서는 비교적 잘 지킨다. 유혹거리가 일단 눈에 띄지 않으므로. 늘 바깥에서 먹을 때가 문제인데, 문제는 일주일에 5일, 6일을 밖에서 먹는 것이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할 때, 메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식단 관리'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고, 잘못하면 "마른 사람이 무슨 관리냐?!"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므로 아주 곤란하다. 그나마 저녁 약속이 없으면 도시락을 싸고 가거나 회사 주변의 샐러드 가게를 이용하면 된다. 그래도 운동하면서 적게 먹는 습관을 들여서인지 많이 먹지 않는 건 그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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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코스에서 디저트를 먹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회덮밥은 먹기 괜찮다. 단, 다 먹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정식.jpg 한정식은 제법 건강식이다. 조금만 먹는다면.


그런데 이렇게 식단 관리를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일인지 검증을 받고 싶었다. 하라는 대로 한 것 같지만, 또 그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므로. 마침 회사에서 직원을 위한 건강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고 했다. 그간 식단 관리했던 표를 들고 상담했다. 간단하게 고혈압, 혈당을 체크했는데 정상. 콜레스테롤에 대한 고민을 얘기했더니, 상담하시는 분은(의사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이렇게 열심히 식단 관리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특히 LDL은 잘 낮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실로 낙담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음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약 25%,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 약 10%이고 나머지는 유전, 체질이라고 했다. 더구나 폐경 이후에는 여성호르몬이 없어지기 때문에, 흔히 폐경 이후 여성들은 콜레스테롤이 높게 나온단다. 아마도 그 의사 선생님은 내 의지가 너무 강해 보여서 식단관리 해 보자고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6개월 후에 검사해도 수치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나,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먹는 습관은 건강한 습관이니 이 기회에 이런 습관을 들이는 건 좋다고 했다. 다행히도 현재 LDL 수치가 높지만,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다른 위험인자가 없으니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아주 많이.


나의 노력은 헛된 것인가? LDL 수치를 정상으로 돌리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도 아직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약을 먹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약은 먹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