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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02. 2023

잘 지내고 있어?

점심을 먹은 후 양치를 하다가 문득 한 후배가 떠올랐다. 내 마음으로는 꽤 친밀하게 여겼던 후배. 팀이 다르고 일하는 층이 달라서 자주 마주칠 수 없지만, 가끔 점심을 같이 먹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뭔가 생기면 ‘줘야지’하고 손꼽는 사람 중의 하나로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후배. 그러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 애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서운함에 ‘나도 그만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라고 혼자 마음을 먹고 조용히 거리를 두었던 후배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문득 그 후배가 떠오른 건 불현듯 내 입장, 내 시각으로만 상대를 바라보았다는 깨달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쭉 이어진다. 어떤 시작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 아침 출근길에 회사 건물의 비상계단을 오르며 나를 데리고 한의원을 갔던 옛날 사장님이 생각났다. 호주 시드니 지사에 파견되어 일할 때였다. 20대 시절 해외에서 일한다는 꿈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든 나 자신이 대견하여 겁 없이 일하던 때다. 매일 야근하며 가끔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것이 재미있던 때.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일이 재미있었다. 늦게 퇴근해도 출근을 누구보다 일찍 하고 주말에는 당연한 듯 출근했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까지. 그때는 한국이 토요일에도 일하던 때여서 시드니라도 일을 해야 했다.  


사실 사장을 바라보는 직원의 마음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일 적으로 존중하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적으로 좋아지기는 힘든 사람. 거리가 일정하게 생기는 사람. 더구나 내게는 시드니 지사의 사장보다는 서울 본사의 대표가 더 친밀했다. 나를 채용하고 지사로 발령 낸 사람이고 본사 직원으로서 지사에서 일하는 거니까 지시도 본사 지시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마찬가지로 지사장으로서는, 나를 완전한 자기 직원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더니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사무실 근처에 워낙 먹을만한 점심 식당이 없어서 종종 다른 동네로 다녀왔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차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의원 앞이었다. 어리둥절해하며 따라 들어갔는데 지사장님은 한의사에게 내 보약을 지어달라고 하셨다. 한의사는 내 맥을 짚어보고, 내게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는 않지만, 진료 침대에 누워 침을 맞았던가, 부항을 떴던가 뭔가 했던 기억만 난다. 얼떨결에 진료를 받고 나오자 사장님은 “요새 얼굴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라고 하시며 “보약 먹고 몸 챙기면서 하라”라고 하셨다. 그때 정말 놀랐다. 밤낮없이 일하며 좀 피곤했던 건 사실이지만,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 재미 이런 것들로 힘든 줄 모르고 일했기 때문에 내 얼굴색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느끼지 못했던 내 건강을 챙겨주었다는 사실에, 그렇게 나를 걱정해주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지사는 본사 직영이 아니고 지사장이 별도로 투자해 만든 법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지사장은 나와 소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서 마음의 거리를 더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렇듯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호의를 받을 때가 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전혀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 내가 찾고 있던 일자리를 알려 주어 취직을 한 적도 있다. 같이 석사를 하던 동기가 시간 강사 자리를 알려준 적도 있다.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꼭 친하고 내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어디에 추천할 때, 소개팅을 주선할 때 등등의 경우에 꼭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만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일하면서 그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사람 됨됨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아주 잠깐 스친 인연이라도, 내가 좋게 평가한 사람(굉장히 주관적인 평가)들이 떠올랐다. 그 들 입장에서 나의 그런 추천들은 ‘의외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알기는 하지만, 어떤 일로 엮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받는 호감, 호의. 어렸을 때는 그런 인연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그 순간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데 일조한 그 사람들에게 제대로 “고맙다”라는 인사를 전한 적도 드물다. 그때는 그런 모든 일을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다. 내가 능력 있으니 취직을 한 거고, 내가 잘하니까 그런 일들이 내게 들어온 것이라고 여기고 그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들은 그냥 머리속에서 흘려 보냈다.      


사회생활 연차가 쌓이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내게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왜 요즘 애들은 인사를 할 줄 몰라’라고 했다가 내가 딱 그런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나이에는 세상 모든 일이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나이임을. 나도 그랬기 때문에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을.      


회사에 내가 좋아하는 후배들이 꽤 있다. 그런 후배와 종종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아주 가끔 생일선물을 챙기기도 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 인사를 건넨다. 나쁜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여있으면 위로의 말을 전하거나 가벼운 선물로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으로 나는 내 호의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호감을 표현한 것은 내 방식대로 내가 좋아서 한 것이었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차렸을 수 있지만, 그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그 이상의 더 친밀한 감정은 없었을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알아챘다. 내가 그 시드니 지사장님으로부터 뜻밖의 호의를 받았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유대감이 더 깊어졌다거나, 평생 은인으로 여기지 않은 것처럼. 순간의 좋은 인연이 내 인생에 끝까지 남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좋았던 사람, 내게 잘해주었던 사람으로 추억 속에 남을 뿐이다. 어떤 경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분명 지금의 내 모습을 있게 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사람이 있을텐데 순간은 기억나지만, 사람은 기억나지 않고, 설사 누구였는지 기억해도 이름을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혼자 살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누군가를 도와주며 산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 순간마다 매번 고맙다는 인사로 한 턱 쏘며 살 수는 없다. 대신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주게 되고, 그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사는 것 같다. 그게 인생인 것 같다. 그러니 내 방식대로 호감을 표하고 다가가 놓고는, 내 호의를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거리를 둔 건 상대방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속 좁은 일이었다. 더구나 힘든 시간을 보낸 그 후배는 나까지 떠올릴 만큼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건넨 어줍짢은 몇 마디의 위로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힘들 때는 어떤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 나였다는 자각을 그날 양치하며 했다.     


이제 오며 가며 마주치면 눈인사만 하지 말고, 예전처럼 말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를 둔답시고 안부는 묻지 않고 눈빛으로만 인사하며 지나다녔는데, ‘안부를 물어야겠구나’라는 마음을 양치하면서 먹었다.      


그날 오후, 그 후배를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쳤다. 뭔가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후배의 눈빛이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망설이는 눈빛. 난 왜 이 눈빛을 이제야 본 걸까? 그녀를 망설이게 만든 건 정작 멀리하려 했던 내 마음이었겠구나 싶었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직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나는 그녀 뒤에 서며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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