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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pr 02. 2023

똑똑한 요즘 아이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팀 회의를 한다. 대표이사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나오는 각종 공지 사항과 공유해야 할 정보들을 팀원들에게 알려주고, 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의 진척 상황을 상호 공유한다. 그렇게 공식적인 얘기를 나눈 후에는 대개 업무 외 얘기로 넘어간다. 요즘 가고 싶은 여행지, 떠들썩하게 사회면을 달구고 있는 뉴스 혹은 주식, 부동산 시장, 회사 근처 예쁜 카페 등 주제는 엄청 다양하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사생활도 알게 된다.

     

한 팀원이 즐거운 대화 끝에 “내일 친구들을 만나면 이 주제로 얘기해야겠어요”라고 했다. 우리가 나눈 얘기 중 마음에 든 주제가 있단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무슨 주제로 얘기할지 미리 정하고 만나?”라고 했더니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보통 생각하고 나가지 않아요?”라고 반문하는데 그 또래의 다른 팀원을 비롯한 우리는 아무도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대화를 하지 않아?”라고 했더니 그 직원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어떤 무리든 여럿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 있고, 그 화두를 가지고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 있고, 그 얘기에 호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팀원이 “저는 반응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라고 금세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그 직원은 평소에도 리액션이 좋은 직원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 말을 한다. 화두를 던진다는 직원은 간식을 먹을 때나 팀 회식을 할 때, 대화가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게 한다. 그의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팀장님은 어떤 타입이세요?”라고 묻는데 언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일순 떠오른 생각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다. 대화를 이끄는 사람은 결코 아니고, 화두를 던지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응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참 재미없고 존재감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스스로 실망스러울 때쯤 불현듯 이렇게 말했다. “난 먼저 만나자고 하고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라고. “그리고 만나면 총무 역할을 해. 밥값이든 여행비든 비용정산을 내가 한다”라며 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가치를 찾아서 기쁜 듯.     


90년대생과 같이 직장생활을 하며 애환 한두 가지쯤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고방식이 다름에 따라 말과 행동을 삼가는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혼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리고 으레 ‘그들은 이럴 것이야’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커다란 간극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90년대생이라고 하여 그들의 특징을 모아놓은 천편일률적인 사람이 아닌데, 가끔 같은 기준으로 싸잡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들이 우리를 “꼰대”라고 싸잡아 부르듯이.      


얘기를 해 보면, 그들은 각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 직원은 자신을 “준거집단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전 직장에서는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다들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결혼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비혼주의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했다. 또래 친구들이 무엇을 입고 먹는지에 영향을 받아서 '나도 저 정도는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나이 이상의 많은 이들은 “줏대 없다”라고 할 것이다. 혹자는 “남들에 의해 휩쓸리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명확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들은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 무엇을 하고 싶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실천한다. 돌이켜보면, 내 이십 대는 그저 친구들과 놀고 여행 가고 회사 다니는 일에 충실했다. 집 장만, 자녀 계획, 노후 계획 등은 결혼 후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미뤄두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결혼 이후로 미루지 않는다. 결혼은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옵션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꾸리기 위한 재테크부터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한 운동, 은퇴 후 혹은 회사 다니면서라도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위해 관련 자격증 따기 등 소위 ‘갓생 살기’를 한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모두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본 이, 삼십 대는 극히 일부 일 것이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더 많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며 사는 “요즘 아이들”은 분명 더 똑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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