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회사에서 유연근무제를 시작한다고 했다.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에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을 정하고 하루 8시간 일하는 조건을 갖추면 된다고 했다. 직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 늦게 일어나는 사람 등 각자 생활에 맞게 근무시간을 정해 활용했다. 그러나 팀장들은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9시 전에 출근했고 6시 칼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연근무 시간을 정하는 일이 의미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팀장 몇몇은 8시 출근, 5시 퇴근하는 유연근무를 신청했다. 매번 5시에 퇴근할 수는 없어도 가끔 일찍 나갈 수 있을 때 미안한 마음 없이 당당하게 퇴근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신청했다. 그러다 코로나 때 재택근무를 하라는 회사 지침이 생겼는데 이때도 팀장들은 나왔다. 긴급상황 발생 시 팀장들은 상황대처 필수인력이니 나와야 한다는 논리가 한몫했다.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팀장도 자연스럽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최근에는 사가독서 휴가제도가 생겼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는 조건으로 2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팀원들이 결재해 달라고 그룹웨어에 올린 휴가계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느 날은 팀원들 앞으로 책 한 권씩이 배달되었다. ‘단체로 무슨 책을 구입한 건가?’하고 궁금했는데 독서 통신 교육을 신청하면 읽고 싶은 책을 보내주는 회사의 교육제도였다.
회사가 일과 생활 균형 조직문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다양한 제도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예외라는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었다. 팀장은 그런 제도를 다 이용할 시간도 없지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회사 일이 나의 일이고,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고, 회사가 원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심지어 회사의 이런 다양한 제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뜰하게 챙기는 직원을 얄밉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회사가 누리라고 만든 제도를 누리지 않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그런다고 일을 소홀히 하거나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런 꽉 막힌 사고를 했었나 싶다. 오히려 그걸 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생각의 전환 및 실천을 연습하고 있다. 수십 년간, 아침 9시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는 일이 힘들었던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시차출퇴근제를 이용하기로 했다. 얼리버드(Early Bird) 형 팀장 중에서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윗사람은 일찍 출근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기에 8시나 8시 30분에 출근하고 5시나 5시 30분에 퇴근하는 시차출퇴근제 신청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5시나 5시 30분에 퇴근하는 팀장이 없었으므로. 어쩌다 한번 가뭄에 콩 나듯이 일찍 퇴근하는 건 양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넘어갔다. 반면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지고 퇴근을 늦게 해도 별 불만이 없는 나는, 어차피 늦게 퇴근하니 출근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9시 30분 출근 신청을 하기 전에 다른 팀장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열에 아홉은 만류했다. 대표에게 찍히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 9시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대표나 본부장이 찾을 확률이 높은 시간이다. 그래서 좀 망설였지만, 과감하게 용기를 냈다. 팀장으로서는 최초로 늦게 출근하는 시차출퇴근제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윗사람들이 속으로는 안 좋게 생각할지언정 그걸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시대가 아닌 것에 감사할 정도다.
그렇게 내가 가진 틀, 남이 가지고 있을 틀을 깨버리고 나니 뒷일은 쉬웠다. 사가독서 휴가 2일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독서통신 교육도 매달 꼬박꼬박 챙겼다. 덕분에 책을 다시 손에 들게 되었다. 독후감을 써야 하니 기한 내에 책을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탓으로 마음만 가득했던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내 돈 들이지 않고.
작년에 처음으로 워케이션(work+vacation) 제도가 생겼다. 직원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무작위 추첨으로 대상자를 뽑았다. 나는 당당히 신청했다. 어떤 팀장은 후배들에게 양보하려고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왜?”라는 의문을 던졌다. 회사에서 팀장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면, 신청자 범위를 명확히 했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양보하려고 신청하지 않은 그 팀장의 마음을 아는 직원이 몇 명일 것이며, 혹여 안다고 해도 그들이 고마워할 사안인가 싶었다. 어차피 추첨은 무작위이고 신청한다고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청자가 많으면 경쟁률이 올라가지만, 팀장이 경쟁률 제고에 일조했다고 뭐라고 할 직원이 있을까? 회사에서 팀장도 신청하라고 만든 제도를 굳이, 일부러 사양할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무작위 추첨 당일, 회사에서는 화상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전사 중계를 했다. 사람이 뽑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정말 무작위 추첨을 했다. 한 명씩 뽑힐 때마다 사무실에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려 2박 숙박료를 지원하는 제도였고 꽤 좋은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비용이었기 때문에, 당첨된 사람은 기뻐할 만했다. 댓글 창으로 서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추첨 시간은 짧았지만, 일종의 축제처럼 직원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시간이었고 그 자체만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운에 맡긴 추첨이었으므로 누구 하나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슨 운이 있었던 것인지, 나도 당첨되었다. 팀장으로서는 유일하게 혼자되었다. 회사가 5층, 6층 두 개 층을 사용하고 있는데 6층 근무 직원 중에서도 유일했다. 그렇게 제주도로 워케이션을 다녀왔다. 개인 연차와 붙여서 좀 더 머물다 왔다. 워케이션을 간다고 본부장도 대표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내가 눈치를 못 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랬다 해도 개의치 않았겠지만) 다녀오고 난 후, 다른 팀장들은 좋은 선례가 생겼다며 다음에는 눈치 보지 않고 신청하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가 누가 워케이션을 갔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녀온 당사자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뿐. 그러니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눈치 볼 필요는 없다.
그런 제도를 누린다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윗사람이 있든 없든 열심히, 잘한다. 팀장도 마찬가지다. 팀장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의무, 역할을 시차출퇴근제 한다고, 사가독서 휴가를 쓰고 워케이션을 간다고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다. 팀장은 관리직이고 경영자층에 가깝게 있는 사람이지만, 역시 노동자다. 그러니 노동자가 누리라고 만든 제도는 누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