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랬다.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귀는 편도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 중 가장 오래된 친구들은 대학 친구다. 요즘 흔한 MBTI로 보자면 극단적인 I 다. 낯선 사람한테 말을 걸 수 없고, 낯선 환경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조금 익숙한 환경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편한 상황에 놓여도 불편하다고 잘 말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음식에 머리카락 같은 것이 나오면, 그냥 빼고 먹는다. 그걸 드러내놓고 불평하지 못한다. 속으로만 ‘다시는 이 식당에 오지 말아야겠다’라고 결심할 뿐이다. 친구들과 만나도 주로 듣는 편이다. 친구들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얘기 듣느라 고생했다.”
이렇게 내성적인 성향을 말하면 회사 직원들은 깜짝 놀란다. 회사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를 잘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가 끊겨 공백이 생긴다 싶으면 먼저 말을 곧잘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질문에도 잘 응답한다. 행사장에서 먼저 명함을 건네 인사하고, 사회를 봐야 하는 행사에서는 사회도 잘 본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일에 별 거리낌이 없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수년간 단련된 탓에 그리 떨리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만 본 직원들은 내 MBTI를 추측할 때 대부분 E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단히 연습했기 때문이다. 남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하고, 표정 연습을 하고,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외웠다. 앞에 설 때는 ‘지금 발표할 내용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고 자기 암시를 했다. 듣는 청중은 ‘다 한 식구다. 내가 좀 실수해도 이해할 사람들이다’라고 여기며 ‘아는 사람들 앞에서 편하게 얘기하는 것이다.’라고 되뇌었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앞이라고만 생각하면 한없이 긴장됐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아는, 내 본연의 모습과 아주 상반된 모습은, 완전히 학습화되고 사회화된 모습이다.
사회 초년생 때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내 모습으로 있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과 상황 때문에 많이 울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이 내 본모습인가 의아하기도 했다. 타인에게 맞춰야 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연차가 쌓이고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두 나라는 것.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내 모습은 그 상황에 맞게 달라진다. 가족, 친구, 친척, 회사 동료, 상사, 모르는 사람 등 상대방에 따라 쓰는 가면이 다르다. 의식하지 않지만, 저절로 태도와 말투가 달라지고 상대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늘 굳은 얼굴을 하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직원을 볼 때면 ‘집에 가서 웃기는 할까?’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에서 그가 제 아내를 다정하게 쳐다보는 얼굴을 보고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상대가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장착하고. 어떤 직원은 회식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어서 술을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동기와 친구들과는 곧잘 마신다는 소리를 듣고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다. 회사에서는 조용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가면을 수시로 갈아서 끼운다.
그러다가 민낯을 드러낼 때가 있다. 혼자 집에 있을 때. 혼자가 아니라도 기본적인 욕구를 푸는 생활공간을 같이 쓰는 사람과 있을 때. 대부분 가족, 가장 편하고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는 가면을 벗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가장 나약하고 추하고 비열하며 유치하고 치졸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것으로 서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질리기도 한다. 화가 나기도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면을 쓴 사이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민낯의 어두운 면을 본 사이는 오히려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가면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