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필두로 90년대생과 회사 생활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고충, ‘꼰대’ 소리 듣는 현실의 씁쓸함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지금은 2000년대생에 대한 얘기가 오간다.) 실제로 5년 전, 10년 전의 회사 내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일이 많다. 일례로 예전에는 9시 출근이면 최소 10분 전에 출근하여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겼다. 10년 전에는 팀장이 팀원들에게 일찍 출근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는 10분 전이 아니라 30분 전, 1시간 전에 나와서 일하는 선배, 동료들이 많았다. 그러니 정서적으로 20~30분 전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그 당시 직원들에게는 “적어도 10분 전”이라고 백번 양보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9시에 딱 사무실에 도착하면 된다. 도착해서 손 씻고 커피나 차를 마시다가 9시 넘어 자리에 앉아도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유연근무제가 생기면서 자신의 생체리듬 혹은 생활 방식에 맞추어 출, 퇴근 시간을 정하기 때문에 9시에 자리에 앉아 있는지 없는지는 의미가 없어졌다. 팀원마다 출근 시간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팀장은 출근 시간으로 팀원을 지적하지 않게 되었다. 팀장의 일 중 하나가 팀원이 지각하지 않는지를 살피는 일이었다. 지각이 잦은 직원을 보면 ‘무슨 일이 있나? 몸이 아픈가? 회사 업무가 권태로워졌나? 퇴사 준비를 하나?’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예의주시했다가 면담을 하기도 했다. 대개 지각이 잦은 직원은 개인적으로 피치 못 할 일이 생겼거나, 회사에 마음이 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팀원이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척도로 ‘출근 시간’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나도 9시 30분에 출근하면서 10분 전 출근을 지키지 않게 되었다.
회사생활을 제법 오래 한 나는 달라지는 팀원들의 태도와 생각에 적응하느라 꽤 심적 고통(?), 갈등(?) 이런 것들을 삭이고 견디며 이해하려는 노력의 시간을 보냈다. 2017년부터 조금씩 ‘뭔가 다른데!’라고 느꼈는데, 그렇게 느끼게 된 건 점심을 다 같이 먹지 않으면 서다. 점심때가 되면 팀끼리 자연스럽게 밥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 각자 점심을 먹으러 가기 시작했다. 일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팀 내에 남아있는 건 나 혼자이기 일쑤였다. 간혹 약속 없는 과, 차장이 남아있을 때가 있었지만, 그들도 곧 개별적으로 약속을 만들더니 따로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점심 먹고 오겠다'라고 인사하고 나가는 팀원들이 몇몇 있었다. 지금은 온다, 간다고 말을 하는 직원이 극히 드물다. 이제는 팀원과 점심을 먹으려면 미리 약속을 해야 한다. 직원들은 점심시간까지 팀 사람들과 다 같이 밥 먹는 것은 일하는 것 같아 싫다고 한다. 팀장이라도 같이 가면 일 얘기가 빠지지 않을 수 없으므로 더 싫단다. 오히려 혼자 먹더라도 자기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 현상은 코로나를 겪으며 가속화되었고, 혼자 먹는 일은 이제 아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점심시간에 밥만 먹는 직원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운동을 하는 직원은 부지기수다. 취미가 맞는 직원들끼리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혼자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사내 휴게실에서 낮잠을 잔다. 점심을 거르는 직원도 많다. 처음엔 점심을 먹지 않는 직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몸이 어디 아프지 않고서야 점심을 거르다니. 내게는 점심시간에 밥 먹는 일은 배꼽시계에 밥을 주는 일이다. 시계가 돌아가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출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하는 순서로 하루를 굴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밥을 안 먹는 직원에게 습관처럼 밥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말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공허한 말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염려하는 마음이 그리 큰 것도 아니면서 잔소리라니. 밥을 먹고 안 먹고는 개인의 자유의지인 것을.
처음엔 혼자 덩그러니 남는 게 싫어서 약속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빈 시간으로 남겨놓고는 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팀원들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니 편하고 좋다. 팀장도 점심시간에 일 얘기하고 싶지 않은 건 같다. 점심시간은 휴게시간이고 완전한 개인의 시간으로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에 적극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요즘 직원들과 일하면서 완벽 적응을 마친 또 하나는 개인적인 질문을 잘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휴가는 불문이다. 개인의 연차를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이므로 묻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디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 무엇 때문에 가는지' 등을 물었고 휴가 가는 사람도 흔쾌히 말을 했다. 사생활 침해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같은 회사 사람끼리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직원을 향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간혹 윗사람이 그런 질문을 할 때 대답하기 곤란할 때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묻는 사람을 '예의 없는 사람' 취급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잘못 왜곡되면 팀원 휴가 못 가게 하는 팀장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당사자가 무엇 때문에, 어디로, 누구와 가는지를 말한다면 모를까 궁금해하면 안 된다. 가끔 휴가 다녀온 직원에게 “어디 다녀왔어?” 정도의 질문을 인사처럼 할 때가 있지만 그것도 친밀감이 좀 쌓였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묻기 어렵다.
요즘 직원들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은 '일로 만난 사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하기 위해서 친하게 지내지만, 사생활 영역은 내주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 팀 내에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이 있었다. 한 직원이 퇴사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 남아있는 직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 “000 씨는 요새 어떻게 지낸대?” 그랬더니, 그 직원은 “연락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속으로 좀 놀랐다. 엄청 친하게 붙어 다녔는데 진짜 '일만 하는 사이'였나 싶었다. 일할 때는 이런 관계가 산뜻하고 깔끔하다. 감정이 섞이지 않으면 일하기가 훨씬 편하다. 일 못하면 질책하고, 일 잘하면 칭찬하기에도 편리하다.
하지만, 출근 시간으로 팀원의 마음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없고, 점심시간에 이것저것 두서없는 말을 나눌 수 없고, 휴가지에서 재미난 일은 무엇이었는지를 말하지 않는 이런 문화는 감정이 섞일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이 문화에 완벽 적응하여 잘 살아남아 있지만, 때때로 삭막함을 느낀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 윗 세대도 우리 세대를 봤을 때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90년 대생들이 2000년대생을 보고 그렇게 느낄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점점 인공지능이 판별하는 시대를 사는 21세기에 태어난 직원들은, 인간미라는 것마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