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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23. 2023

남극광을 보러 가요.

-대가 치른 허세-

이럴 줄 알았다. 어딘가 내키지 않고 찜찜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대로 했다면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와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해서 일을 겪게 되면 ‘꼭 귀신이 쓰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하듯이, 그때 그랬다.      


오로라는 북쪽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혹은 알래스카 또는 캐나다를 가리라고 다짐했었다. 버킷리스트(burket list)에 오로라를 보는 일이 들어간 것은 아마도 북유럽으로 백야를 보러 가면서 시작된 것 같다. 노르웨이 여행을 준비하던 와중에 겨울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한겨울에 가야 하고 날씨가 맑지 않으면 못 볼 확률도 높다고 했다. 오로라 사진을 볼 때마다 ‘저 신비로운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며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겨울은 선뜻 나설 수 없게 만드는 큰 원인 중의 하나였다. 타고나기를 저체온으로 태어났고, 추위를 엄청 많이 탄다. 코로나 때 모든 건물, 시설에 드나들기 위해 열 감지를 해야 했을 때 36도를 넘어본 적이 별로 없다. 손, 발은 항상 차고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로 씻어야 한다. 조금 쌀쌀한 날씨에 찬물에 과일이라도 씻을 때는 손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려서, 더운물을 틀어 손을 녹였다가 찬물로 다시 과일을 씻고는 한다. 그러니 그 추운 곳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라고 막연한 바람을 담아 버킷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그런데 우연히 인스타그램(instagram)에 뉴질랜드에서 찍었다는 오로라 사진을 봤다. 오클랜드에서 본 사진을 비롯하여 퀸스타운(Queenstown), 더니든(Dunedin), 인버카길(Invercagill), 스튜어트 섬(Stewart Island) 등에서 찍은 오로라 사진이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에서 목격한 오로라 사진도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알고 보니 남극과 가까워서 볼 수 있단다. 오로라 현상은 북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남극에도 있는 자연 현상인 것이다. 북극 오로라는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 또는 오로라 보스트렐리스(Aurora bostralis)라고 부르고, 남극 오로라는 서던 라이츠(Southern Lights) 또는 오로라 오스트렐리스(Aurora Australis)라고 부른단다. 갑자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날이 확 앞당겨진 느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소원으로 성큼 다가왔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 추위를 견딜만하다.      


그렇게 뉴질랜드에 가기로 했다. 평소 해외여행은 안 가본 곳 위주로 간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목적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푹 쉬고 싶은 목적이 컸으므로, 기왕 가는 길에 오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싶었다. 뉴질랜드는 오래전 살았던 곳, 그래서 그냥 ‘친숙한 곳’, ‘언젠가 살고 싶은 곳’이다. 게다가 거기엔 친구도 있었다. 익숙한 곳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마음을 돌보기에 적절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혼자보다 재미있을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명확한 출발일은 정하지 않았지만, 내심 계획은 8월 중순에 떠나기로 하고 항공편, 숙박시설을 알아보면서도 예약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뭐가 쓰인 듯, 왜 중순에 떠나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해야 할 일은 병원에 가는 것과 트레이너와 운동 약속을 잡은 게 다였다. 심신의 휴식을 위해 떠나고 싶은 여행인데, ‘여행 기간이 더 길어지면 좋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항공 좌석이 없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자 정말 괜히 초조하고 불안했다. 분명 항공 좌석 여유가 많이 있다는 걸 봤는데도, 그 자리가 곧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것도 극단에서 공연 연습 중간중간 눈치 보며 예약했다. 내심 마음먹고 있던 날짜보다 일주일 앞당긴 날짜로 덜커덕. 돌이켜보면, 항공 좌석이 없어질까 불안했던 마음과 출발일의 상관관계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줄곧 눈여겨봤던 항공편은 8월 중순 출발하는 항공편이었으므로.     


항공편을 예약하고 나자, 여정을 잡게 되고 숙박시설을 예약하게 됐다. 친구가 오클랜드에서는 자기 집에 머물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은 몰라도 일주일씩 있는 건 서로 불편할 것 같았다. 퀸스타운에도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다고 했는데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 호텔을 예약했다. 나는 숙소를 알아볼 때 몇 개 앱에 들어가 가격 비교를 하고, 최종적으로 해당 숙소 사이트에 가서 비교해 본다. 숙소에서 프로모션 하는 기간과 맞으면 예약 사이트보다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뉴질랜드는 입국 전에 ETA(Electronic Travel Authority)를 받아야 한다. 앱으로 신청하면 웹으로 하는 것보다 5달러 정도 저렴하다고 해서 앱을 깔았는데 신청화면이 뜨지 않고 에러가 났다. 일시적 에러인가 싶어서 며칠 기다려보고, 앱을 지웠다가 다시 설치하기를 여러 번 해봤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블로그를 보니 앱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다른 이용자들의 후기가 있기에, 할 수 없이 웹으로 신청했다. 뉴질랜드는 ETA 신청비(NZD 23.00) 외에 방문객들로부터 관광환경기금을 받는다. 무려 35달러. (한화 약 28,000원)      


항공편은 다들 스카이스캐너(sky scanner)가 싸다고 해서 뉴질랜드 국내선 예약을 해볼까 했는데 알아보니 젯스타 항공사(jetstar Airways) 사이트에서 사는 것이 제일 저렴했다. 대한항공에서 모바일 체크인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좌석을 보니 앞 좌석은 추가 요금을 내라고 되어 있다. (이코노미 좌석이 시작되는 자리부터 세 번째 줄 좌석까지) 예전에는 추가 요금이란 것이 없었는데 코로나 이후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 앞 좌석을 선호하는 나는 좀 망설이다가, 이 정도 비용은 감당할 수 있다며, 출발일 2일 전에 7만 원을 더 내고 앞 좌석을 선택했다.      


휴가 시작하는 날부터 감기로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얼른 약 먹고 나으려고 동네 병원에 가서 5일 치 처방을 받았다. 처음엔 코로나인가 싶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그러나 낫지 않아서 회사 근처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하고 음성이라고 하여, 5일 치 감기약을 받고 먹었으나 또 낫지 않았다. 오히려, 열나고 오한 나고 더 아팠다. 당장 내일 출발인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도저히 아픈 걸 참을 수 없어서 집 앞 병원을 갔다. 거기서도 코로나 검사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양성이 나왔다. 코로나 확진이 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일 비행기 타야 하는데!!      


요즘은 격리하지 않아도 되니 떠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 몸 상태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짐 끌고 다닐 상태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여행 일정을 미루었다. 출발일 변경 수수료를 내야 했고, 앞 좌석으로 예약했던 것은 취소 시점이 너무 늦어서 환불 불가. 7만 원을 날렸다. 퀸스타운 호텔에 코로나로 여행 갈 수 없다는 사정을 얘기하고 연기 요청을 했으나, 방이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소료 50%를 내야 한다며, 바로 내 카드에서 돈을 빼갔다. 뉴질랜드 국내선도 변경 수수료가 나왔다.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70만 원을 손해 봤다. 퀸스타운에서 친구가 말한 곳에서 자기로 했다면, 비행기 앞 좌석에 앉겠다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면, 부담하지 않아도 될 취소료였다. 원래 예정했던 중순이 아니라 일주일 더 빨리 출발하는 일정으로 여행 준비를 하면서 뭔지 모르게 주저하는 마음이 따라붙었는데, 이러려고 그랬나 싶었다. 어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를 그 날짜에 가지 말라고 잡은 것 같았다. 취소료가 아까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후련해졌다. 결국 애초 생각했던 날짜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액땜한 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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