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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24. 2023

알싸한 겨울 냄새가 나는 뉴질랜드

- 35도에서 1도로 -

코로나 격리 5일이 끝나자마자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아팠던 몸은 다행히도 약을 3일 치 먹은 후부터 괜찮아졌다. 2019년에 국제선을 타고 거의 4년 만에 타는 국제선이었다. 인천공항은 업무적으로 종종 갔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는데 출입국 절차가 좀 바뀌어 있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갈 때 하던 여권과 탑승권 검사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했다. 안면 인식을 하는 기기. 그 이후 절차는 예전과 같았다. 면세점 구역에 들어서니 해외로 간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전에는 탑승구까지 가면서 이곳, 저곳 구경하며 다녔다. 사지는 않더라도 예쁜 것들을 보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항까지 오면서 금방 피곤해졌다. 어서 자리 잡고 앉고 싶었다. 아마도 코로나에서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닌 듯했다.    


 비행기 좌석 예약을 할 때, 비교적 앞쪽 좌석이 남아있어서 그 자리로 예약했다. 기내 좌석은 둘, 넷, 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가운데 네 자리가 붙은 좌석 중 한 좌석만 예약되어 있길래, 반대편 통로 쪽 자리를 잡았다. 앞 좌석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쌩으로 7만 원을 물어냈기에 앞줄 세 자리는 다시 돈 내고 앉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자리는 앞에서 아홉 번째쯤 되는 자리여서 괜찮았다. 출발 당일, 공항버스 안에서 모바일 체크인을 했다. 잡아두었던 좌석보다 조금 앞 좌석에 빈자리가 보였다. 심지어 네 좌석이 모두 비어있어서, 혹시 누군가 타도 나까지 2명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옮겼다. 그런데 막상 탑승하고 보니 두 명이 그 줄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커플이 자리를 잡은 거다. 실망스러웠다. 원래 앉기로 되어 있던 뒷좌석을 보니 1명이 앉아 있었다. 미련이 묻어나는 눈으로 그 뒷자리를 계속 흘금거렸다. 기내식을 먹은 후,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 혼자 앉아 있던 그는 누워서 자고 있었다. 잘난 척하고 자리를 옮기지만 않았어도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겨우 두 세줄 차이가 뭐 그리 대수라고 옮겼나, 발등을 찍었나 싶었다. 비행기 착륙 후 내리는 순서가 빠르다 하더라도, 큰 차이 없는데 말이다.      


젊었을 때는 밤 비행기가 좋았다. 시간을 절약하는 기분이었다. 밤에 푹 자고 아침부터 다닐 수 있고, 숙박료도 아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밤 비행기는 힘들다. 좁은 좌석에서 쭈그리고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눈은 감기는데 정신은 말똥거려서 피곤하기만 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장장 12시간을 자다 깨다 반복하다, 결국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크게 관심 가는 영화가 없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시간을 때우는 마음으로 봤다. 이것도 변화 중의 하나다. 예전에는 비행기를 타면 못 보았던 영화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다.        


비행기에서 아침을 맞이한 적은 수없이 많다. 일몰, 일출을 여러 차례 봤다. 이번 비행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 끝이 붉었다. 지평선도 수평선도 아닌 그건 무어라 불러야 하나? 하늘에서 보는 하늘. 구름이 아래로 떠가는 하늘 위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늘 경이롭고 아름답다.

오클랜드행 비행기에서 본 일출

드디어 13년 만에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알싸한 겨울 냄새였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뚫고 들어와 싸한 냄새를 전한다. 쌀쌀하지만 얼어버릴 정도로 춥지는 않은 겨울 날씨. 을씨년스럽지만, 시원하게도 느껴지는 이 뉴질랜드 특유의 겨울 날씨가 여기서 살던 이십 대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그 시절 입었던 손뜨개 베이지색 스웨터에 두꺼운 갈색 재킷, 출근길 차 안에서 듣던 신승훈과 이승환의 노래들 그리고 그 노래를 배경으로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것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외국에서 일하며, 내가 여기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제일 잘 느꼈던 순간. 운전하며 보던 오클랜드의 모든 풍경, 사람, 건물, 길 그것들이 내게 전해주던 뿌듯함. 특히 아침 출근 시간 시내 거리는 차량으로 빽빽하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나 자신을 자각하던 때, 그건 이방인으로서 내 몫의 무언가를 잘 움켜쥐고 있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종종 친구들이 꿈꿨던 외국에서의 생활을, 바로 내가 잘해 내고 있다는 마음에 스스로 도취되기도 했다.

오클랜드 공항, 시내에 위치한 극장

국내선 터미널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정류장을 한 번의 헤매는 일 없이 바로 찾았다. 안내판을 따라온 것뿐 인데, ‘역시, 난 혼자 잘 다닐 수 있어’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꺼운 외투는 배낭에 넣었던 터라 쉽게 꺼내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치마는 좀 추웠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목도리, 모자에 코트를 입은 사람, 바바리를 입은 사람, 패딩을 입은 사람 그 가운데 반 팔 입은 사람, 반바지 입은 사람 등 옷차림이 다양했다. 역시 뉴질랜드 사람들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추위를 덜 타는 것 같다. 반 팔, 반 바지라니!     


퀸스타운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후여서,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기모가 들어간 운동복 바지를 꺼내 치마 아래 입고 모자와 장갑을 꺼냈다. 오클랜드 국내선 터미널에는 에어뉴질랜드(Air NewZealand)와 젯스타 항공사(Jetstar Airways) 체크인 카운터가 떨어져 있어서(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젯스타 항공사 카운터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공항 와이파이에 연결하여 친구와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하는 나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외국에 혼자 떨어지면 느낄지도 모르는 초조함, 불안함,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늘 이곳에 살던 사람처럼 아주 마음이 편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자각도 들지 않았다. ‘살았던 곳이라서 이렇게 편한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간, 혼자 여행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닌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걱정을 했다. 무엇보다 ‘혼자 다니다가 쓰러지면 어떡하지?’라는 염려를 했다. 아마도 건강을 자신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한테 휴대폰 충전을 잘하고 다니고 혼자 살지 말고,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을 한 친구의 지인이 한 말에 영향을 받았다. 괜히 겁이 났다. '혼자 다니지 말랬는데, 가도 될까?'하는 마음에 같이 여행 갈 친구를 구해봤지만 시간 맞는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뉴질랜드에 친구가 있었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이고 익숙한 곳이라는 점 때문에 혼자 여행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뉴질랜드도 셀프 체크인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탑승수속을 하고, 짐 표를 받았는데 스스로 짐에 표를 붙이는 일은 좀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다. 짐 표에 적혀있는 도착지, 항공편을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고 내가 제대로 붙였나 싶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일부러 짐 표를 들고, 카운터 앞으로 갔다. 어차피 짐을 부치려면 카운터로 가야 하니까. 항공사 직원이 친절하게 짐 표를 붙여주고 탑승권도 뽑아줬다. 늘 모바일 탑승권만 이용하다가 종이로 된 탑승권을 받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젯스타는 저가 항공사다.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짐 무게와 개수에 따라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기내식이 포함된 것도 있고 사 먹어야 하는 요금도 있다. 부쳐야 하는 짐이 있어서 추가 요금을 냈는데 거기에 기내식이 포함되어 있었나 보다. 스튜어디스가 바나나 맛 빵 하나를 주었다.     

젯스타 기내에서 준 바나나 빵, 젯스타 비행기
온통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구름
퀸스타운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설산과 구름

퀸스타운(Queenstown)에 도착했다. 35도의 뜨거운 여름에서 1도의 겨울로 왔다. 거의 20시간 만에 완전히 정반대 계절로 왔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사람과 빌딩으로 복잡한 도시만큼 마음이 복잡했던 서울을 떠나, 탁 트인 자연의 품으로 왔다. 퀸스타운 공항은 어느 한적한 시골 공항처럼 작았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낮은 산, 낮은 하늘, 손에 잡힐 것 같은 구름. 그리고 알싸한 겨울 냄새. 삼십 년 만에 온 여왕의 마을이 나를 반겼다.

퀸스타운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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