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네가 있는데 넌 어떻게 하니?

by 지홀

늦은 저녁 시간에 엄마가 전화하셨다. “청심환 좀 사다 줘. 몸이 이상해”라고 다급하게 말씀하셔서 나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독립해서 살 때 일이다. 부모님 집과 차로 10분 거리에 살았다. 형제 중 제일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차를 몰아 부모님 집으로 향하면서 무슨 큰일이 생긴 건 아닌지 가슴이 두근댔다. 엄마가 웬만해선 연락하실 분이 아닌데 급하게 찾으시는 걸 보니 위급상황 같았다. 청심환으로 해결될 일인지,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동생들한테 연락해야 하는지 등 오만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잡생각에 하마터면 청심환 사는 일을 잊어버릴 뻔했다.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 연 약국을 발견했다. 길가에 시동도 끄지 않고 차를 세운 후 뛰어 들어갔다. 약사는 ‘환’으로 된 약과 물약 중에서 뭐가 필요하냐고 느긋하게 물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둘 다 달라고 했다. 집에 정신없이 도착했다. 엄마는 물약을 단숨에 드시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셨다. “엄마, 괜찮아요?”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계시다 기운을 차리신 듯 말씀하셨다. “내가 가끔 이러잖아. 갑자기 쓰러질 거 같고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화장실 가고 싶기도 하고. 아까 잠깐 똥 누고 났더니 좀 괜찮아지는 거 같아. 청심환 먹었으니 나아질 거야” 하시며 자리에 누우셨다. “갑자기 오라 해서 놀랐겠네. 비상용으로 사다 놨는데 다 먹었는지 안 보여서…. 청심환 많이 사다 놔야겠어”라고 하시더니 의식의 흐름대로 청심환 예찬론을 펼치셨다. 말씀이 많아지신 걸 보니 괜찮아지신 것 같아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실 수 있게 된 후로 포털 뉴스와 유튜브 등을 자주 보신다. 엄마는 문자를 주고받으실 수 있어서 카톡도 사용하신다. 데이터가 금방 사라지는데 두 분 모두 데이터 용량에 대한 개념을 모르시기 때문에 내가 충전해드려야 한다. 매번 딸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이 미안하셨는지 아빠가 “에이~ 이런 거 이제 안 봐야겠다” 하셨지만, 또 보신다. 주말에 거실로 나오지 않는 아빠가 궁금해 방문을 조용히 열어보면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계신 모습을 보게 된다. 온라인의 각종 콘텐츠는 남녀노소 누구나를 끌어당기는 블랙홀임에 틀림없다.


혼자 지낼 때 아빠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2~3년을 그냥 흘려들었다. 아빠 혼자 정형외과, 한의원 등을 잘 다니셨고 약 드시면 낫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다. 합가 한 후에야 무릎이 아파 걷기 힘들어하시는 걸 알아챘다.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거부감이 크셨던 아빠는 멀쩡한데 왜 수술하라고 하냐며 역정을 내셨다. “아프다 말다 하는 거지, 걸을 수 있어”라며 수술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할 수 없이 한방 병원으로 옮겨 침 맞고 약 드시면서 진행 속도와 증세를 완화시키는 치료를 했다. ‘더 일찍 체계적으로 치료받으시게 했으면 덜 고생하셨을 텐데’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다. 부모님과 다시 합가 하며 내세운 핑계대로 병원에 모시고 갈 일이 종종 있다. 어떤 해는 유난히 그 횟수가 많고 어떤 해는 적다.


아빠가 나라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치매 검사를 받으셨는데, 보호자 데리고 한 번 더 오라고 했다며 종이를 내미셨다. 그 종이에는 검사 일시와 함께 반드시 보호자와 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치매이신 걸까?’ 아빠는 다 잘 대답했는데 몇 개는 헷갈렸다고 하셨다. 재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는지 검사센터에서 나눠준 문제 풀이를 보여주시며 “이거 내가 푸는 게 맞는지 봐줘”라고 하셨다. 평소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동문서답하실 때가 있어 답답하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게 다 치매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응어리졌던 마음이 탁 풀리며 너그러워지는 걸 느꼈다. 문제지를 식탁에 놓고 아빠 옆에 앉았다. 아빠는 학생처럼 문제를 천천히, 꼼꼼히 읽고 답을 적으시며 한 문제에 한 번씩 나를 보며 확인하셨다. 나는 학습지 선생처럼 “좋아요, 맞아요” 라거나 “그 숫자 말고 더 큰 숫자 있어요” 하면서 같이 문제를 풀었다. 첫 말 뒤에 떠오르는 단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푸셨다. 초성으로 단어 연상하는 문제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잘 푸셨다. 큰 숫자에서 작은 숫자대로 배열하는 문제에서는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이깟 것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듯 의욕적이셨던 아빠는 자꾸 막히는 문제가 나오자 눈에 띄게 기운을 잃으셨다. 세 페이지쯤 문제를 푸시다가 “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힘들어. 다음에 해”라고 하시며 연필을 놓으셨다. 머리가 지끈거리시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셨다. 안쓰러웠다. 나는 “그래요, 그만하세요. 다음에 풀어요”라며 아빠 어깨를 토닥였다.


치매 재검 일자에 아빠를 모시고 주민센터에 갔다. 검사장으로 조성된 강당으로 갔더니 검사센터 직원이 보호자와 같이 왔는지 확인했다. 내가 보호자임을 밝히자, 아빠는 “얘가 내 딸이에요” 하면서 혼자 오지 않았음을 강조하듯 말씀하셨다. 아빠 먼저 들어가셔서 여러 테스트를 했다. 나중에 보호자 들어오라고 하여 평소 행동에 대해 이것저것 확인했다. 상담 끝에 치매인지 물어보니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라고 했다. 심하지 않으므로 내년에 검사를 다시 하라고 했다. 아빠는 조금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아빠는 아무것도 아닌데 왜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아무도 없는 노인네인 줄 알았나 봐”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그랬을 리 없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아니라며, 혼자 살면 얕본다며 갑자기 내 걱정을 하셨다. “우리는 네가 있는데 넌 어떻게 하니?”


친구 희경이 딸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얘기를 할 때 “혼자 못가?”라고 의아한 듯 물었다. 희경이는 “혼자 갈 수 있는데, 예림이가 굳이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갔지”라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딸이 같이 가준다고 할 만큼 컸다, 든든했다' 같은 말을 담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난 누구랑 같이 가지?’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응급실 갈 때 여동생을 급히 불러 간 적 있지만, 그것도 가깝게 살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친한 친구, 후배들이 있지만,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할 수 있는 사이인지 아직 정의할 수 없다.


에이징 솔로 책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외국의 커뮤니티 사례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완전 남에게 부탁할 수 있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부터도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 선뜻 그런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것 같다. 현재로는 끈끈한 연대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단할 수 없다. 그때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지 알 수 없고, 보호자를 만들기 위해 미리 억지로 끈끈한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그저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서적 안정적 관계로 발전하다 보면 끈끈한 관계가 될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없는 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과학발전으로 돌봄 로봇이 보편화된 순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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