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딸이시군요

by 지홀

엄마는 평소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결혼하면 지긋지긋하게 하게 될 테니 지금은 안 해도 돼.” 그래서인지 두부나 콩나물 같은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신 적 없고 특히 부엌일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셨다. 그렇게 집안일을 으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독립 이후 시작한 살림살이가 익숙해져 부모님과 다시 합친 이후에도 주말이면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등을 했다. 한동안은 내가 하는 것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하지만 무슨 계기가 있으셨던 건지, 부엌일을 못 하게 막으셨다. 음식 만드는 건 둘째치고 설거지도 못 하게 만류하셨다. 나 혼자 먹은 그릇을 치우는데도 “그냥 놔둬, 내가 하게” 하신다.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면 금세 옆으로 달려와 나를 밀쳐내신다. 어떤 날은 그런 엄마가 고마워서 못 들은 척 슬그머니 손을 놓고 소파에 가 앉는다. 또 어떤 날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 했어, 내가 할게요”라고 씻던 그릇을 꼭 잡고 엄마를 밀어내는 때도 있다. 엄마는 내가 싱크대 앞에 서기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게 설거지야” 하시며 말리시는데, ‘언제부터 설거지를 좋아하셨지?’ 싶다. 여태 보아온 엄마는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히, 열심히 집안일을 하시던 분이지 좋아서 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종종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하시며 음식을 만드신다.


도시락 가방을 본 직원이 “부지런하시네요. 아침에 이렇게 도시락을 싸시고”라며 칭찬했다. 나는 쑥스러워하며 “우리 엄마가 싸주신 거야”라고 했다. 이런 대화를 하면 그 직원과 내가 말하는 엄마의 연령대가 마치 비슷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실은 우리 엄마는 그 직원의 할머니뻘 되는데. 운동 시작 후 도시락을 싸서 다닐 거라는 말을 했더니, 당장 장을 보겠다고 하셨다. 신경 쓰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도시락 신청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시장에 가야 싱싱하고 싸게 살 수 있다며 극구 말리셨다. 엄마 손을 빌릴 의도는 없었는데 도시락 싸는 일이 엄마 몫의 일이 되었다.


쉰 넘어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그것도 무려 아침용 채소, 간식용 과일, 저녁용 밥을 들고 다니는 일이 철없고 한심하고 비정상으로까지 느껴지다가도, 딸을 위해 뭔가 하실 수 있는 걸 좋아하시는 거라며 넘긴다. 항상 고맙고 죄송하지만, 가끔 잊는다. 뭔가 입이 궁금한 오후 시간, 간식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다. 보통 과일을 싸 주시는데 그날은 은행을 구워 꼬치에 가지런히 꽂아 주셨다. 혼자 먹기에 양이 좀 많아서 팀원에게 한 꼬치를 건네었다. “이거 팀장님 어머니가 하신 거예요?”라고 묻더니 “팀장님은 사랑받는 딸이시군요” 한다. 사랑받는 딸. 엄마의 사랑은 늘 이렇게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로 불현듯 느끼게 된다.


코로나로 엄중하던 시절, 코로나에 걸려 생활치료소에 입소했다. 꽤 위중한 전염병으로 인식될 때라 부모님 충격이 크셨던 모양이었다. 매일 전화와 문자로 안부를 확인하셨다. 정작 나는 몸살, 감기 수준의 피곤함만 있었다. 게다가 호텔에 차려진 생활치료소 덕분에 1인 1실에서 편히 지냈다. 엄마가 몇 날 몇 시에 퇴소하는지 확인하시더니 “네가 좋아하는 닭볶음탕 하고 기다릴게. 건강히 있다 돌아와”라고 하시는데 그 말에 잠시 울컥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퇴소 날, 아침 10시에 예정되어 있던 퇴소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겼다. 퇴소자들이 많아 대기시간이 길었다. 다행히 생활치료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열흘 만에 쐬는 바깥공기에 심취해, 집까지 걸었다. 걷는 와중에 회사에서 온 문자에 답을 보내며 일했다. 10시라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부모님께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기다리실 부모님 마음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계시다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마중 나오셨다. 무사한지 얼굴을 살피시며 크게 아프지 않고 돌아와 좋다고 하시는데 아빠 손에는 소독제가 들려있고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반면 엄마는 겁도 없이 내 물건에 마구 손을 대시며 세탁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분리하셨다. 두 분은 아침도 거르시고 내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전화 한 통만 하면 되었을 것을. 언제나 자식은 이기적이다. 부모님은 구급차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을 창문 밖으로 보며 기분이 아주 묘했다고 하셨다. 입원 한번 해본 적 없는 두 분에게 응급실, 구급차 이런 것은 현실감 없는 일이었을 텐데, 그런 구급차에 딸이 타고 가는 것을 보셨으니 진짜 충격이셨던 모양이었다.


후배 미영과 수다를 떨다가 못다 한 얘기는 다음에 하자며 새벽 1시에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휴대전화를 봤더니 엄마, 아빠, 심지어 여동생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기가 울리는지 몰랐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여동생에게 전화했더니 “왜 전화를 받지 않아?”라며 “부모님이 언니랑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하셔서 내게도 전화했다”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부터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연락 두절 된 딸이 걱정되어 잠 못 이루고 계셨다. 두 분은 “늦으면 미리 연락해라”라는 말씀을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 날 아빠는 “집에 일찍 와. 오늘 너 운수를 봤는데 남자 조심하래”라고 하셨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인가?’, ‘이 나이에 남자를 조심하라니!’ 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마스크로 감추며 고개만 끄덕였다. 부모님의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라는 고전적인 레퍼토리는 자식이 육십, 칠십이 되어도 똑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남자 조심해라”라는 말을 오십이 넘은 미혼의 딸에게 건네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빠는 딸이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직 포기하지 못하셨을지도. 반면, 엄마는 “남자 조심하라”와 같은 말은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남자 있으면 “하룻밤이라도 어떠냐!”라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의중은 항상 남자가 아니라 ‘아이’를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부모가 다시 아이처럼 되고 자식이 보호자 노릇을 하더라도, 부모 눈에 그 자식은 여전히 어린 자식인 것 같다.


남들은 쉰 넘은 나이에 부모님과 산다고 하면, 부모님을 봉양하는 줄 안다. 하지만 봉양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오히려 캥거루족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순간이 많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고 물질적으로 기대지 않아도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받는 심적 위안이 크다. 남들 앞에서는 성숙한 어른인 척 굴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철부지 같이 군다. 아마 난, 자식에게 쏟는 부모의 마음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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