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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2024. 9. 17

by 지홀

추석의 한자를 풀면 가을 저녁. 단어 자체가 운치 있고 낭만적이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차가운 냄새와 낙엽이 연상되는 단어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워 가을 저녁이 아니라 열대야의 여름 같은 날씨다. 9월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제법 시원한 바람에 이불 덮고 잔 날이 며칠 있었지만, 다시 여름날로 회귀했다. 동생과 조카들이 와서 하루종일 에어컨을 켜고 있었다. 에어컨을 산 이래 장장 10시간을 틀어놓기는 처음이다.

추석날 한낮(12:38, 12:39)

정오 무렵에는 뭉게구름이 많았는데 오후 4시경에는 양털구름이 많았다. 양털구름 사이 무지개가 보였다. 비가 갠 것도 아닌데. 무지개를 언제 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실제 내 눈으로 이렇게 본 적이 있던가? 분명 어렸을 적에는 본 것 같은데 성인이 돼서 본 적 있는지 확실치 않다. 마치 생전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한 마음에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드렸다.

성당 등의 천장화 같은 구름(16:17)
무지개 뜬 하늘 (16:17)

이불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에 올랐다. 옥상에서는 하늘을 360도 볼 수 있어 좋다. 주변 집들의 높이가 낮았을 때는 남산타워도 보였는데 수년 전 높게 지어진 집이 시야를 가렸다. 바로 옆집이 얼마 전 우리 집보다 높게 지어 내 눈높이로 360도를 보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고개를 젖히면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하늘 관찰하기에 무리 없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16:19)
얇고 두꺼운 구름층(16:20, 16:21)

노을 지는 하늘은 언제 봐도 멋지다. 오늘은 구름 속에서 폭포와 그 아래 밝게 빛나는 동네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확대해서 찍고 보니 폭포 그림은 사라지고 모래폭풍, 먼지폭풍 혹은 화마가 동네를 삼킬 것처럼 위태롭다.

노을지는 하늘과 폭포가 내리는 동네(16:08)
동네가 사라지려 한다(18:09)

한쪽은 급박한 풍경, 한쪽은 평화로운 광경, 다른 한쪽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양. 시선을 바로 옆으로 돌렸을 뿐인데 전혀 다른 느낌의 하늘 모양이다. 마치 이 지구세상처럼. 어디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어디는 평화롭고. 서로 다른 딴 세상이 공존하는 지구.

평화로우면서 역동적인 하늘(18:09, 18:10)
달무리, 달빛 (21:00~21:06)

구름 사이로 달이 보일 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과연 그랬다. 달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달무리를 지어냈다. 구름이 달을 가리기를 반복했지만 달 주변의 빛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볼수록 신비롭다.


달빛에 물든 구름색은 석양빛에 물든 구름 색과 비슷했다. 왼쪽은 오늘, 추석에 찍은 달. 오른쪽은 9월 2일 17시 42분에 석양.

9월17일 달(21:05), 9월2일 해(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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