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름 조각

2024. 9. 21

by 지홀

사진으로는 푸른빛이 돌지만 맨 눈으로 보기엔 그냥 희뿌연 하늘이다. 흰 천으로 덮었거나 하얗게 페인트 칠을 한 듯 구름 조각 없이 매끈하다. 그저 하늘이라는 바탕에 통으로 물감을 부어 붓으로 펴놓은 것 같다. 좀 더 두꺼워 보이거나 어느 쪽이 얇아 보이거나 구름이 층층이 쌓여보이거나 하지 않고 그 두께가 균일하게 칠해진 것 같다. 아무 표정도 아무 느낌도 없는 백지 같다. 답답하다. 숨 쉴 틈 없이 꽉 막혔다. 하늘이 숨 쉬는 유기체라면 질식할 것 같은 날이다.

구름조각 하나없는 하늘(14:32, 14:53)
숨막혀 보이는 하늘(17:14, 17:16)

연극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제야 겨우 구름 사이 군데군데 빈틈이 보였다. 숭숭 나 있는 구멍 사이로 하늘이 숨을 쉬는 것 같아 덩달아 나도 숨통 트인 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숨통 트인 하늘(19:30, 19:34)

공포에 질린 연기를 연습하며 호흡을 과하게 했을까? 손이 저리고 머리까지 저려서 힘들었다. 방법을 배웠으나 제대로 하지 못해 겪는 부작용 같다. 극단에서 매주 2회 6시간에서 8시간 연기수업을 듣고 있다. 희로애락을 비롯한 미세하고 섬세한 감정을 잡아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나는 표현했는데 보는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말을 하라"가 무슨 말인가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연습을 하며 조금 알 것 같았다. 이해한 만큼 몸으로 대사로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노톤의 지루하고 딱딱해 답답함마저 유발하는 연기가 아닌, 완급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하여 관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구름 사이 빈틈을 보고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잔뜩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