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숙소에서 먹는 조식 뷔페는 연 이틀 먹은 거로 충분하다고 하셔서 김밥 사러 숙소를 나섰다. 김밥집은 9시부터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하릴없이 십여분을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다행히 해변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함덕 해수욕장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먹구름이 낀 하늘에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없이 나간 터라 차양막이 처진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며 사진을 찍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아 맞을만했다. 하늘에 먹구름 뒤로 맑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비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먹구름 뒤 맑은 구름, 인적드문 해변(08:53, 08:54)
김밥집에서 본 함덕해수욕장 (09:08)
김밥집은 3층에 위치해 함덕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김밥과 라면을 먹으며 경치를 감상해도 좋을 것 같았다. 전망이 정말 멋졌다.
반면, 김밥은 내 생애 가장 비싼 김밥이었다.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전복김밥, 오징어 먹물에 밥을 해서 만든 해녀김밥 등 제주도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김밥이기에 가격에 저항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를 수 있었다. 게다가 밥 양이 푸짐하여 2,3개만 먹어도 배가 찼다. 8천 원, 8천5백 원 값을 했다고 납득했다. 또한 갓 지은 밥으로 따뜻하게 김밥을 내 준 점이 마음에 들어 비싼 가격을 상쇄시켰다.
난 여름이든 겨울이든 김밥을 따듯하게 먹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김밥 전문점, 분식점은 대개 미리 싸놓은 김밥을 주어 차갑다. 어떤 때는 미리 만들어놓지 않았을 만한 메뉴를 주문해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따뜻한 김밥을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전략은 때로 맞았고 때로 틀렸다. 따뜻한 김밥을 주는 곳을 찾아 헤맨 적도 있다. 늘 가던 곳이 늘 따듯한 것만 주는건 아니어서 새로운 곳을 발굴하려고 돌아다녔다. 특히 추운 겨울에 차가운 김밥을 주는 곳은 아무리 맛있어도 잘 가지 않게 된다.
먹구름 사이 태양, 맑은구름이 더 많아진 하늘(09:08, 09:09)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김밥, 서울로 오는 기내에서 찍은 하늘 (09:42, 13:35)
서울로 올 때도 비행기가 25분 지연 출발했다. 제주도로 오가는 하늘길의 교통체증이 심한 것 같았다. 수시로 탑승구가 변경되었다는 안내방송, 출발이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왔는데 무슨 버스나 기차를 타는 일처럼 아주 쉽게 변경되는 일이 놀라웠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일은 버스나 기차 운행보다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울 것 같은데 아니었던가? 혼선이 일어나지 않아 신기했다.
서울 하늘이 제주도의 하늘보다 더 탁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지, 진짜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다만, 언제나 햇빛이 쏟아지는 광경은 왜 그런지 성스럽다.
집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찍은 하늘(15:10)
한강과 뿔달린 괴물?(15:11, 15:12)
한강 풍경이 멋있다. 내가 찍었지만 한강, 한강다리, 구름을 한 장면에 잘 담은 것 같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찍었는데도.
낯선 환경에서 아이처럼 내게 의지하던 사람이 자신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보여주는 그 자신감, 아니 아집과 엉뚱한 발언은 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평소의 그 복잡 미묘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이 또한 늙어갈수록 아이가 되는 과정 중의 하나일까? 앞뒤 재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