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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Oct 08. 2024

적정 거리

2024. 10. 7

일요일의 연기수업이 밤 11시 30분에 끝났다. 연습실 밖은 쌀쌀함을 넘어 추웠다. 평소라면 걸어서 집에 갔을 것이다. 빨리 걸으면 15분, 느리게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간절한 마음을 하늘에서 들으셨는지 택시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려 '빈차'라고 표시된 택시가. 길거리에서 무작정 택시 잡기 어려운 세상인데 요즘말로 키비키다. 얼른 손을 들었다. 택시 기사가 못 봤는지 나를 지나쳤다. 아쉬운 마음에 택시를 따라 뒤돌아보았다. 그때 택시가 멈추었다. 간발의 차로 나를 본 게 틀림없었다. 얼른 택시에 탔다. 택시가 왔던 방향으로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5분도 안되어 집에 도착했다. 거의 기본요금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7,100원이 나왔다. 이 요금이면 집에서 회사 가는 거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택시 야간 할증 시간이 밤 11시부터다. 12 시인줄 알았는데 과한 요금을 냈다. 그래도 춥지 않게, 피곤한데 빠르게 집에 왔다고 애써 합리화를 시켰다.

눈 쌓인 모습의 구름과 파도치는 바다같은 구름(08:37)

오늘의 하늘은 어제의 단조로운 모습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눈밭처럼 보이는 구름이 있는가 하면 태양이 떡하니 자리를 잡은 주변의 하늘은 파도치는 바다 같은 모습이다. 솜뭉치 같은 구름은 만지면 포실포실 부드러울 것 같다. 얇고 폭신한 털실 같기도 하다.

솜 뭉치 같은 구름(08:39)

요 몇 주 점심을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먹었다. 오늘도 도시락을 쌌지만 오랜만에 밖에서 먹고 싶어 그 도시락은 저녁에 먹기로 했다. 약속 없는 팀장이 추천한 백반집에 갔다. 백반집에서 그야말로 집에서 먹을만한 반찬으로 먹었다.  숙주나물, 구운 김, 미역국, 김치, 오징어 젓갈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이 나왔는데 한약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탄수화물만 잔뜩 먹었다. 이럴 거면 도시락을 먹는 게 나을뻔했다. 맛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밥 먹고 산책할 수 있어 좋았다. 어슬렁거리며 느릿느릿 걸으며 하늘 사진을 찍었다. 같이 간 팀장은 하늘 볼 생각을 잘 못하는데 덕분에 자기도 하늘을 본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을 몇 장 연거푸 찍자 왜 그렇게 많이 찍냐고 궁금해했다. 나는 매일 하늘 사진을 찍는 일이 나만의 1년 프로젝트라고 말해줬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궁금증이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속속들이 서로를 알아야 할 정도의 친밀감은 없으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으면 된다. 그 거리를 좁히자고 어쭙잖은 질문, 리액션을 하면 서로 에너지를 끌어 쓰느라 피곤지수만 더욱 올라갈 뿐이다. 마음이든 관계든 적정거리가 필요하다.

점심식당으로 가는 길(12:02,12:04)
산책하며 본 하늘(12:47, 12:52)

점심시간에 산책하고 사무실이 있는 7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퇴근 후 필라테스를 했다. 이 정도면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부터 운동량은 충분하다. 비록 만보를 걷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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