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늦잠을 자고 싶은 날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9시는 물론이고 10시까지 잤다. 20~30대는 오후 12시를 넘겨 잘 때도 많았다.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고 원래 야행성인 사람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올여름부터 밤 10시만 되면 졸리기 시작해 12시를 넘기기가 어렵고 아침에는 7시면 눈이 떠진다. 할 일이 있어 억지로 1시나 2시쯤 잔 경우는 8시쯤 깬다. 더 자고 싶은데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 18,000보를 걷는 기염을 토한 후 피곤해서 11시부터 잤다. 일요일이라 9시쯤 일어나려고 했는데 7시에 깼다. 일어난 김에 손빨래하고 세탁기는 속옷, 겉옷 나누어 두 번 돌렸다. 5주 만에 화실 가서 두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어렵사리 표를 구한 연극을 봤다.
"이 불안한 집"을 보고 김정 연출의 팬이 되었다. 5시간 공연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 그의 연출력에 놀랐기에 새 연극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매회 전석 매진이었다. 10월에 막을 올리기에 9월 말 경에 예매하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전석 매진될 거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극단원들과 단관 할 계획이었는데 아주 야무진 꿈이었다. 낙담하고 관람을 포기했다가 어느점심시간에 홈페이지에 혹시나 하고 들어가 봤다. 모든 공연 일자를 하나하나 눌러봤다. 그런데 13일 일요일 공연 좌석 1개가 떴다. 웬 횡재인가 싶었다. 잽싸게 예약했다.
화실에서 극장까지 걸으며 기대감에 설렜다. 그런데 잔뜩 기대한 마음을 나 스스로 보기 좋게 배반했다. 초반 10분 정도 졸았다. 연극 시작하기 전까지 정신이 말똥 했는데 조명이 다 꺼졌기 때문일까? 안 자려고 무지 애를 썼는데 눈꺼풀이 무겁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극"모든"은 인간의 자유의지,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인간이 기계의 통제를 받는다는 설정의 얘기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미래는 소수의 돈 많은 정신 나간 사람이 다수의 제정신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인간을 통제하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선 개발비, 운영비 등 자본이 필요하기에 지배욕, 권력욕이 강한 어마어마한 자본가가 빅브라더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시대에 살게 되면 인간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아마도 인간성, 인간적이란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연극주제와는 좀 다른 상상을 해봤다.
태양의 대부분이 가려진 하늘(11:59, 14:24)
양털구름이 가득(14:24, 14:29, 17:18)
수채화로 그린것 같은 하늘(17:23, 17:46)
공연 관람 후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극단 연습실 근처의 맛있는 붕어빵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팥, 흑임자 붕어빵을 샀다. 연기수업 듣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고 사람 수 대로 샀는데 이미 저녁을 많이 먹어 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덕에 나 혼자 3개나 먹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이 사 온 호두파이를 먹었다. 한약 때문에 금지했던 음식을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먹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라고 합리화시켰다. 수업은 11시를 훌쩍 넘겨 11시 50분에 끝났다. '에너지를 썼으니 많이 먹어도 괜찮았어 '라며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