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모처럼 외부 일정이 없는 날. 카페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할까 하다가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에 있기로 했다. 선크림 바르는 것도 귀찮고 모처럼 스킨, 로션만 바른 맨 얼굴을 하고 싶었다. 침대에 늘어져 있고 싶기도 했다.
매월 지출금액을 항목별로 정리하는데 몇 달째 미루고 있었기에 그것도 정리하고 싶었다. 그때그때 수입과 지출을 확인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얼마를 어디에 썼는지 머리에 남지 않아 꼭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한 지 30년 가까이 된다. 매년 어디에 돈을 제일 많이 썼는지 적금과 예금은 얼마를 모았는지 적어두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문제는 항목별, 예를 들면 식대, 교통비, 문화비, 교류비, 의료, 피부(회장품, 피부과 등) 등등으로 구분해서 정리하는데 기록을 열심히 하지만 분석은 없다. 즉, 다음에는 여기서 줄이고 이 항목은 소비를 좀 늘려도 문제없구나 같은 분석을 하지 않는다. 그냥 기록하고 여기에 이렇게 돈을 많이 썼구나 정도로만 본다.
어느 달은 교류비로 100만 원을 썼는데 유독 경조사가 많고 하필 그 달에 팀원들과 점심을 많이 했고 친구 모임도 2~3개 있으면 그렇게 쓰게 된다. 경조사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고 1년에 한, 두 번 모이는 모임에 안 갈 수도 없고 회사에서 네트워킹을 위해선 점심을 안 먹을 수 없다. 그러니 뭘 좀 줄이고 늘리겠다는 분석 내지 결심은 소용없을 때가 많다.
어떤 달은 적자다.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월급으로 메꾸지 못할 때면 적금을 깬다. 눈물을 머금고. 카드값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어 본 적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사치했거나 아주 엉뚱한 곳에 쓴 게 아니라서 딱히 줄일 부분이 없다. 아, 택시비를 줄이려고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는 노력은 한다. 작년에는 정말 매일 택시 타고 출근했다. 9시 30분까지 출근했는데 거의 매일 지각할 것 같아 택시를 탔다. 러시아워가 지난 시간이라 택시가 아주 잘 잡혔다. 그 김에 거의 매일 탔다. 올해 들어 9시로 시간을 바꾸었더니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핑계김에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탄다. 교통비가 작년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 게다가 K-pass카드를 쓰니 환급을 해줘서 아주 이득이다.
난 기록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매일 누구와 밥을 어디서 먹었는지, 영화나 연극은 무얼 봤는지 친구와 만나 어디서 무얼 했는지 적어둔다. 한 친구가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나는 거지?"라고 물으면 바로 달력에 기록한 것들을 뒤진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누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누구와 전화통화했는지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마도 꾸준히 연락할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었을 거다. 그래도 연락이 끊겨 인연이 끊기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고작 3개월 지출 정리하는데 하루종일 노트북을 켜놓고 수 시간째 붙들고 있다. 문득 밤 12시가 넘은걸 보고 놀랐다. 브런치에 글을 먼저 올리고 마무리하자. 오늘의 글은 거의 의무 방어전 같다. 하늘 사진도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오후에서야 한 장도 찍지 않았음을 알았다. 부랴부랴 옥상에 올라가 사방을 향해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