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고 대학 동창들과 불암산 치유센터를 방문했다. 출근 시간보다 빨리 집을 나섰다. 노원역에서 만나 택시로 불암산 입구에 내려서 산 내부에 위치한 치유센터까지 걸었다. 작년에 일 때문에 방문했던 치유센터에서 언젠가 체험을 꼭 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이루는데 1년이 걸렸다. 그냥 잠깐 뒤돌아서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1년, 2년이 훌쩍 지나있다.
우리는 오감숲 체험을 신청했다. 휴대폰을 끄고 짐을 보관함에 넣은 후 아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도록 했다. 예약할 때 내심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족히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인지 우리 일행 5명만 따로 체험해서 더 좋았다.
처음에 물치유로 시작했다. 약초 물을 푼 곳에 발을 담그고 발가락 운동으로 발을 풀어준 후 천천히 걷기, 호흡하며 걷기 등을 통해 발의 감각을 느끼고 내 몸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 후에는 숲 속을 아주 천천히 걸으며 나무 사이, 풀 사이사이에 놓인 글 귀를 읽고 느끼고 사유하며 걷도록 유도하는데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풍나무 숲에서 가장 예쁜 단풍나무를 찾아 그 나무와 대화를 해본다. 거울 놀이로 나와 친구들이 한 거울 안에 담기도록 몸을 밀착해 보고 거울에 비친 땅을 보며 걷는 체험은 이색적이면서 재밌었다.
멧돼지가 자주 출현하는 장소에서 왜 멧돼지가 자주 내려오는지들었다. 그 장소는 진흙으로 된 구덩이가 파인 곳인데 멧돼지가 목욕하는 곳이라고 한다. 몸에 있는 각종 균들을 제거하기 위해 진흙에서 뒹군다고 했다. 진흙이 마르면서 몸에서 떨어질 때 가려움을 유발하는 각종 벌레나 균들이 함께 떨어지기 때문에 그 구덩이가 있는 곳에 자주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구덩이 옆 나무에 멧돼지가 진흙을 문 댄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도토리, 밤을 먹고사는 멧돼지가 먹을 것이 없어 점점 인가로 내려오는 것이라는 설명에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이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 일이란 걸 알았다. 할머니들이 산에서 도토리를 주우실 때 멧돼지의 식량이란 걸 미처 몰랐겠구나 싶었다.
숲에서 멍하니 앉아 하늘을 봤다. 비스듬히 앉아 하늘을 볼 수 있는 의자에서 숲멍빛멍을 했다. 가만히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아 바람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손을 쳐들고 심호흡을 했다. 별 거 아닌 동작들로 보이는 게 다르고 느껴지는 게 달랐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당귀차를 마시고 호흡과 명상을 했다. 무척 알차고 만족스러운 두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 센터장님이 체험 중에는 친구와 대화를 자제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안내를 잘 따랐다. 체험을 끝낸 후 불암산 전망대를 오르며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자 좀 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생경한 체험을 하며 그에 대한 얘기를 하는 편이 좀 더 의미 있고 만남이 더 즐거워졌다.
산은 어떤 산을 가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저 나무와 꽃이 있고 새소리가 들릴 뿐인데 하늘은 도심에서 보는 하늘과 달라 보이고 공기는 훨씬 깨끗하고 맑은 것 같다. 등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산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둘레길을 걷는 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