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통카드를 하차할 때 잘 찍지 않는다. 환승할 때는 승, 하차 모두 찍지만 편도만 이용하는 경우는 찍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서울 버스는 환승이 아니라면 하차 때 태깅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문득, 어제 강화도 터미널에 내리면서 하차 태깅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친구는 종점에서 내렸으니 추가요금을 최대치로 부과하더라도 실제 낼 돈과 차이가 없을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은 하차 태깅을 잊지 않으려고 교통카드를 손에 들었다. 마침 승차 시에 모바일 카드가 결제되지 않아 실물 카드를 썼다. 숙소 근처에서 강화도 군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리며 하차를 찍었다. 터미널에서 점심을 먹고 광역버스를 탄 후 신촌에 내릴 때 하차태깅을 했다. 시내버스로 갈아탄 후 하차할 때 아차차 안 한 거 같다. 확실하지 않은데 태깅한 기억이 없다. 늘 하던 대로 태깅하지 않은 것만 같다. 일상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거 같다. 운동 후 전철을 타는데 2,900원이 찍혔다. 보통 전철 탈 때 1,400원이 찍혔는데 아무래도 태깅하지 않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교통카드 이용내역을 봤는데 어제, 오늘 사용한 이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 11월 말까지 내역만 보인다. 내일이나 모레까지 기다려봐야 정확한 사용 금액과 어디서 태깅하지 않아 추가요금이 붙은 건지 알게 될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휴대폰 보다가 내릴 곳에서 후다닥 내리거나 멍하니 딴생각하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때도 있다. 환승할 때 반드시 하차 태깅해야 하는 걸 알고 카드까지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떤 딴생각이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복기를 해봐도 버스를 내리던 장면이 확실하지 않다.
한 가지 행동을 할 때는 그 행동에 집중해야 함을 다시 되새긴다. 밥 먹을 때는 먹는 것에 집중하고 음악을 들을 때는 소리에 집중하고. 밥 먹으며 휴대폰 보느라 무엇을 먹는지, 맛이 어떤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 집중하느라 엄마가 옆에서 말 시켜도 들리지 않았다. 내게 말를 걸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중에 엄마가 그때 나눈 얘기를 꺼내시면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없기에 후속 얘기가 겉돈다. 행동과 말을 했으나 머리에 남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