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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눈

2024. 1. 5

by 지홀

많은 눈이 예상된다는 재난문자를 받았다. 제법 많은 눈이 내렸고 오후 2시경까지 눈이 내렸다. 나의 체감온도는 추웠지만, 기온은 따듯했던지 눈을 치운 도로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엔 거의 모든 눈이 녹았다.


그림을 그린 지 햇수로 8년이 되었지만 실제 그림을 그린 횟수는 1년이 안되었다. 이렇게 애써 실제 그린 횟수가 1년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참 소심하게 그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과감하게 덩어리 표현을 하지 못하고 세밀 묘사에만 신경 쓰느라 명암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응용력이 부족해 화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만 그리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옛 회사 상사가 미술은 노력으로 안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절대 공감한다. 재능이 있어야 하는 분야인 것 같다. 창의력, 상상력, 표현력 등 부족함 투성이고 그리는 방법 등 기술적인 부분 또한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안다. 그러니 그림 실력이 제자리다. 취미로 그리는 것이라도 잘 그리고 싶은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의기소침해진다.

눈 내린 일요일(12:05, 12:12, 12:12)

그러나 화실을 나서는 순간 그 의기소침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역시 취미로 머무니 심각해지지 않아 좋다.


시네큐브 영화관을 찾은 지 10년은 된 것 같다. 무척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30대 때 영화 동아리 모임하던 때가 떠올랐다. 관객 연령층을 둘러봤는데 거의 내 또래처럼 보이는 관객이 많았다. 그들도 나처럼 젊은 시절 시네큐브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영화 취향이 변하지 않은 사람들. 영화관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어 반가웠고, 오랜 세월 변하지 않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지만)을 만나 반가웠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봤다. 영화화된다고 들었을 때부터 흥행할 영화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흥행하기에는 얘기들이 좀 밋밋하게 흘렀다. 소설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름 울림 있는 영화였다.


오늘 하루도 덤으로 얻은 것이 많다. 사람이 오가지 않은 눈 위를 걸으며 뽀드득 소리를 들었고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고 보고 싶던 영화를 봤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도착하여 기다리지 않았고 눈이 다 녹아 걷기 편했다. 부모님 저녁 시간에 맞추어 집에 잘 도착했다. 이렇게 잘 살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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